‘남한산성’이라는 소설 한 권이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발간된 이 책은 현재 한국의 각종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70년 전인 1636년 12월 14일, 한반도. 북으로부터 청나라 오랑캐들이 쳐 내려옵니다.
이름하여 병자호란. 속수무책, 무방비로 오랑캐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임금은 부랴부랴 짐을 싸 9년 전 정묘호란을 겪었을 때와 같이 강화도로 피신코자 하나 길은 이미 끊어진 상태. 급하게 몸을 피한 곳이 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위치해 있는 남한산성입니다.
이곳에서 조선조 인조 임금은 중국 명나라의 원군을 간절히 기다리며 저항의 모션을 취하지만 결국 그 다음해인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을 뒤로한 채 청나라 군영이 있던 지금의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에 있는 삼전도까지 눈밭을 걸어가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는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리고 항복합니다.
이 소설은 그 47일 동안 남한산성에서 조선조 임금과 그의 신하들, 그리고 성안의 백성들이 겪었던 내용을 엮어 놓은 것입니다.
비록 단 권이기는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기가 막힙니다.
죽기를 무릎 쓰고 청나라 군사들과 싸우는 모습이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성 안에서 갇혀 있으면서도 입으로만 싸워 대의와 종묘사직을 지켜 나가자는 주전파와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가지고 죽음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화친을 맺어 살아 나중을 도모하자는 주화파 간의 말싸움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금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은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저 한 없이 답답할 뿐입니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저자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명분을 따르자니 그 명분을 따를 능력이 없고 실리를 따르자니 그 잘난 명분이 발목을 붙잡았던 상황. 그 시대의 전쟁은 분명 말(馬)과 말(馬)의 싸움이었건만 정작 남한산성에 갇혀 있던 조선의 신하들이 싸운 싸움은 말(言)과 말(言)싸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임금이 두 왕세자와 백관들을 거느리고 청태종에게 걸어 나가 이마에 피가 맺히도록 절을 하고 항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청나라로 인질로 끌려간 인원만 해도 두 왕세자를 포함하여 10만 명. 이때 끌려간 조선의 여인들이 후에 다시 돌아오자 조선의 조정에서는 이들을 환향녀라 이름 지어 박대했다고 하니 이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모두 허울 좋은 명분을 따르느라 정신없었겠지만 오늘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그 조정의 남정네들은 명분은 명분대로 얻지 못하고 실리는 실리대로 얻지 못한 무기력한 남정네들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이 같은 모습만은 절대로 반복되지 않아야할 것입니다.
남한산성. 지금은 한낮 유원지로 전락하여 학생들의 소풍 장소나 남여 행락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으나 그 날의 치욕적인 역사는 쉬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비록 소설의 향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오로지 작가만의 독특한 필체로 옮겨 놓은 책이어서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만의 독특한 필체는 TV드라마 ‘이순신장군’의 원작 ‘칼의 노래’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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