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했다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체포돼 생사 확인이 되지 않는 형의 구명을 위해 손정훈씨가 미국을 방문했다.
자신도 1997년 중국으로 탈북, 한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10일 미 인권단체 VOM(Voice of Martyrs)의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손씨는 사흘간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과 언론,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형 정남(48)씨의 절박한 사정을 호소한다.
손씨는 그러나 “형의 구명 만이 방미 목적은 아니며 이번 기회에 북한의 기가 막힌 인권탄압 사태를 낱낱이 폭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살아있다 해도 거의 폐인이 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형의 처지도 안타깝지만 전 북한 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국제사회가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현재 황장엽 씨가 대표로 있는 북한민주화위원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손씨는 형보다 먼저 탈북했다. 그 때가 1997년. 형 부부는 이듬해인 1998년에 7살짜리 딸과 2살된 손씨의 아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소위 최고 권력층에 속해 있던 그와 형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국을 등지고 떠난 동기를 설명하자면 긴 스토리가 된다. 당시 두 형제는 조국이 그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북을 떠나기 전 임신하고 있던 형수는 말을 실수했다는 이유로 심문을 받다 배를 차여 피를 쏟으며 유산했다. 결국 형수는 중국에서 석 달을 못 버티고 숨을 거뒀다.
그런데 형 정남씨의 삶은 연길에서 한국 선교사를 만나 신학을 하며 또 한 번 방향을 바꾸게 된다. 형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다 북한 복음화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위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결국 북으로 송환됐다. 함경북도 보위부에서 모진 고문과 박해를 견디며 3년을 지냈다. 같은 방에 있던 200여명의 수감자들 역시 같은 혐의로 들어온 전도원이거나 기독교 신자였다. 2004년 봄 석방된 형은 이미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동생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다시 넘어왔다.
형을 만난 동생 정훈씨는 달라진 형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각목으로 머리를 맞았는지 기형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피폐해진 몰골이 아니라 그의 확고한 신앙이었다. 손씨는 “형이 오랜만에 만나 반가울텐데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는 계속 성경책을 읽더라”고 했다.
형은 말했다. “탈북 의사가 없다”고. 첫째는 자신보다 남은 가족이 위험하고 둘째는 기독교 소명 때문이라고 했다. 형은 다시 들어갈 때 성경책을 갖고 가겠다며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손씨는 곧 한국에서 10권의 성경책과 10개의 테입을 기부 받아 형에게 전달했고 그는 자발적으로 다시 북으로 갔다. 그러나 수고비가 적다고 생각한 국경 브로커의 밀고로 형은 평양 보위부에게 붙잡혔고 보위부 관리소에 수감됐다.
지인이 핸드폰으로 형이 공개처형 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 지난 3월. 동생은 백방으로 형의 구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처형 명단에 올라 뇌물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버려 답답하기만 하다.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의 압력. 손씨는 “형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면 국제사회의 감시 덕분일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EU나 유럽 각국과 관계를 잇고 싶어해 세계 인권단체들의 목소리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28일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이날 영국 세계기독연대(CSW) 북한대사관에서 손정남씨 공개 처형과 관련 면담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 사안은 영국 의회, AP 통신, 파이낸셜 타임스, 아시아국제의원연맹 등이 다루면서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데 북한정치범 공개처형수의 실명이 국제사회에 공개되기는 손정남씨 케이스가 처음이다.
2002년 9월 한국에 건너와 살고 있지만 장애인 판정을 받고 건강이 좋지 않은 손씨는 “형을 살리는 일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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