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로잘린 카터 여사, 박근혜 씨에 ‘안방 외교’ 시도
미국은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기회를 통해 영부인 로잘린 카터가 박근혜씨에게 한국의 인권, 핵 확산, 사회 복지 등 문제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토록 하는 ‘안방 외교’를 시도한 사실이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들에서 드러났다.
윌리암 글레이스틴 주한미대사가 1979년 6월21일 서울에서 워싱턴 D.C.의 리차드 홀부르크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에게 보낸 ‘카터 대통령의 서울 방문’이라는 제목의 전보는 “내 생각으로 귀하가 다음번에 미세스 카터에게 브리핑할 기회가 있을 때 박근혜와의 미팅에 대해 커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알다시피 미스 박은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부터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역할을 해왔다”고 전했다.
글레이스틴 대사는 이어 “(박근혜는) 경험과 함께 자신의 역할에 달인이 되고 있으며 27세 나이에 결혼을 비롯한 정상적 활동을 희생하며 헌신하고 있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영향력도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글레이스틴 대사는 또 “근혜의 주요 관심사는 ‘새마을 운동’과 가깝게 연관돼 있는 ‘새마음 운동’이다”며 “‘새마음 운동’은 효도, 헌신과 충성을 바탕으로 한 고유 한국 철학을 강화하는 목적을 두고 있어 그 자체가 권위주의 ‘유신’ 구조의 상당한 일부이다”고 설명했다.
글레이스틴 대사는 이외에도 “미스 박은 국가 정책의 여러 주요 이슈들에 직접 관여하면서 보수 성향을 개발해 나가는 것으로 보이며 ‘궁궐 정치’(Palace Politics)를 즐기고 있다. 또 그녀의 전자공학 배경은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져다 준다”고 평가했다.
글레이스틴 대사는 이와 관련 “어쩌면 우리의 노력이 헛된 것일 수 있지만 나는 미세스 카터가 (한국의) 인권, 핵 확산, 사회복지와 같은 분야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미세스 카터가 (박근혜와의) 미팅을 기회로 삼아 이 같은 문제들은 물론 그 외 논의하고 싶은 실재적인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를 희망한다”며 에스터 피터슨은 지난해 미스 박을 만난 뒤 그녀의 총명함과 영어 구사 능력에 매우 감명을 받은 바 있어 어쩌면 그가 추가 통찰에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글레이스틴 대사가 언급한 에스터 피터슨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정권 당시 연방여성국장을, 린든 B. 존슨과 카터 대통령 정권 당시 소비자관계 특별보좌관을 역임한 소비자 및 여성 운동가 정치인이다.글레이스틴 대사가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서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무부에 ‘안방
외교’를 제안한 동기는 당시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미 연방의회의 한국 인권 문제 개선 압력 등으로 한미 관계가 매우 껄끄러웠던 시기로 카터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사안을 직설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지적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피하려 한 노력의 일원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글레이스틴 대사가 카터 대통령을 위해 같은 해 5월25일 국무부 본부에 보낸 ‘정상회담 백그라운드 1편: 한국 국내 정치 상황’이라는 제목의 전보는 “카터 대통령이 공식 정상회담 석상에서 한국의 내부적 정치 개혁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하다”며 “하지만 이 문제는 비공식적으로 논의 될 수 있고 인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고 ‘정상회담 백그라운드 3편: 인권’이라는 제목의 전보에서는 “(카터) 대통령은 그 어떠한 공공 발표 또는 성명에서도 한국정부와 우리와의 마찰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반 정책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대통령은 비록 특정 정치인, 당, 또는 교회가 (한국)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을지라도 그 사람 또는 그 집단을 구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무부 문서들은 카터 대통령과 함께 1979년 6월29일~7월1일 방한한 로잘린 카터가 과연 글레이스틴 대사의 권고에 따라 박근혜씨를 만난 자리에서 ‘안방 외교’를 펼쳤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카터 대통령이 7월1일 미국으로 돌아가며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에서 박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로잘린과 나는 우리의 여행 기간에 귀하의 관대한 대접에 감사해 한다. 귀하와 귀하의 딸, 귀하 국가의 위대한 국민들에 대한 추억과 특히 토요일 저녁 귀하의 자택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한 것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하고 있어 최소한 로잘린 카터와 박근혜씨와의 비공식 석상 만남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로잘린 카터는 서울에서 박근혜씨는 만난 뒤 약 4개월 후인 10월26일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피격, 서거하자 직접 박근혜씨에게 위로 전화를 걸었으나 당시 박근혜씨가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혼을 빌고 있어 통화가 이뤄지지 못했으며 이와 관련 글레이스틴 대사는 국무부에 전보를 띄워 박근혜씨와의 전화 연결이 안된 상황을 설명하고 로잘린 여사가 “영구적인 문상의 표시로 미스 박에게 위로 편지를 보낼 것”을 제안했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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