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만난 히스패닉, 특히 멕시칸들 중에서 펠리베르또 만큼 성공하고 또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없다. 미국으로 온 모든 돈 없는 이민자들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다.
단골손님들을 상대로 조금씩 개인 수표를 바꿔주기 시작한 어느 날, 한 낮선 손님이 불쑥 마켓 안으로 들어섰다. 옷차림이 남루한 것이 한 눈에 보아도 막 노동꾼이 분명했다. 그는 나를 보자 씨-익 웃어 보였는데 눈이 크고 둥그런 것이 첫 인상이 착하고 좋아 보였다.
자기 이름은 펠리베르또이고 가드닝을 하고 있는데 매주 수금되는 수표액이 적게는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 만 달러가 된다고 했다. 당장 자기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니 갖고 온 수표가 모두 은행에서 문제가 없는 가를 본 뒤에 돈을 주어도 좋다고 했다. 만일 되돌아오는 수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벌금까지 다 물겠다고 했다. 얼마나 신나는 제안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승낙을 했고 펠리베르또는 마켓의 최고 우대 손님이 되었다.
그는 매주 엄청난 액수의 수표를 들고 왔는데 어떤 것은 숫자가 $50,000.00도 넘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이런 수표를 받느냐고 했더니 그가 특유의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는 주로 시의 조경사업과 대 기업들의 환경조성을 맡아 한다고 했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일꾼이 6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8형제의 막내로 멕시코 대학에서 이공계를 다녔다고 했다. 미국으로 와서 8형제 모두 가드닝을 시작했는데 20년 만에 일꾼 60여명을 부리는 가드너가 됐다고 했다. 지금은 형제들이 모두 멕시코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장과 호텔을 하고 있고 자기만 미국에 남아 사업 일체와 모든 돈 관리를 한다고 했다.
그를 백만장자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늘 다 찌그러진 포드 트럭에 나무와 풀을 싣고 다니고 흙이 잔뜩 묻은 바지에 티셔츠 다. 먹는 것도 부리또 하나면 그만이다.
나이는 48살인데 아직 미혼이다. 왜 장가를 안 가느냐고 물었더니 장가갈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펠리베르또는 무척 들뜨기 시작했다. 수년전부터 색시를 멕시코에서 데려오기로 약조가 되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데 어제 이민국의 허가가 났다는 거였다. 마켓에 와서도 수표든 봉투를 획 던지고는 그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펠리베르또가 싱글벙글 거리며 어떤 여인과 함께 마켓 안으로 들어섰다. 한 눈에 새 색시가 분명했다.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여자였다.
색시가 오고 나서부터 펠리베르또는 더 열심히 일하는 거 같았다. 둘이 매일 붙어 다녔는데 그 바람에 새 색시는 미국 온지 얼마 안 되어 새까맣게 타버렸다. 새색시는 무지무지 시골 깡촌 여인이었으므로, 자동화 된 제품들은 단 하나도 몰랐으므로, 심지어는 현관문 여는 법도 몰랐으므로, 매일 펠리베르또를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태어나자 펠리베르또의 입은 더 벌어졌다. 사내아이였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눈도 크고 입도 크고 얼굴도 허여멀건 게 아주 잘 생겼다. 아기가 태어났어도 색시는 펠리베르또만 따라 다녔다. 갓난아기를 강보에 싸들고는 남편 옆 좌석에 앉아서는 젖을 먹이고 우유를 먹이고 미음을 먹였다. 아기는 차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펠리베르또가 차를 샀다. 벤츠 560보다 더 비싼 차다. 아무리 보아도 그들 부부에게 어울리지 않아 “그냥 포드 픽업이나 타고 나를 주면 안 되겠니?” 하고 물었더니 아기 때문이란다. 복도 많은 아기다.
부인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서 돈 씀씀이가 헤퍼지자 페리베르또가 돈에 발발 떠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너같이 돈 많은 녀석이 그러면 쩨쩨해 보인다고 했더니 돈은 들어올 때 모으지 않으면 바람처럼 빠져 나간다고 돈 철학을 시작한다.
오늘도 펠리베르또는 포드 픽업에 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이다. 부인도 똑같다. 아기만 새 옷이다.
다음 주에 멕시코를 가는데 같이 가잔다. 그 곳에서 돈 버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어쩔까 고민 중이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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