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 재활센터에서 새 희망을 찾은 강성도(왼쪽), 윤정훈(가운데)씨가 김수철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상혁 기자>
집 3채 잃고 길거리로… 이혼·실직…
절망·죽음의 문턱서 만난 ‘구원의 손’
홈리스위해 봉사하며 새 꿈을 일궈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올림픽과 알바라도 인근 ‘소중한 사람들’(구 거리선교회) 재활센터에 머물고 있는 7명의 한인들은 지난해와 사뭇 달라진 겨울을 보내고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은퇴를 준비하는 노부부였다. 새로 배운 기술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으며 더 큰 희망을 찾아 LA로 이주했다.
삶은 만만치 않았다. 서브프라임 사태, 경기불황, 실직, 이혼….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몰아닥쳤다. 순식간에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앞이 깜깜했다. 죽음만이 해답 같았다. 그때 손을 내밀어 이들을 잡아준 곳이 바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오래 살았던 김모(61)씨는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소유한 집이 3채였다. 이제는 ‘집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건축업자 김씨는 지난 겨울부터 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페이먼트가 힘들어졌다. 살고 있던 집만은 지키고 싶었으나 그마저 쉽지 않았다. 집 세 채를 모두 숏세일로 넘기자 깡통 밴이 그의 집이 됐다. 밴에서 밥을 해먹고 잠을 잤다. 어느날 밤 누군가가 자동차를 심하게 두드렸다. 경찰이었다.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왔단다.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하늘 아래 마음놓고 쉴곳조차 없었다. 밤이 무서웠다.
LA에서 20여년간 생활해온 최모(46)씨 역시 1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아내와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지난 5월 무작정 집을 나왔다. 술에 의지했고, 직장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방황하는 동안 아내와는 결국 이혼했다. 삶은 희망을 잃었고, 소망은 절망이 된지 오래였다. 샌타모니카 바닷가에 서 있으면 ‘살아 무엇하나’라는 깊은 후회만이 들었다.
최씨는 “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지난 시간을 반성했다. 아내에게는 늘 순종만을 요구했다는 것.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아내에게는 위로를, 자녀들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을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소중한 새 희망’을 본다고 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운타운 홈리스들을 위한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센터의 일을 도우며, 새로운 꿈을 꾼다고 했다.
3년 전 미국에 온 윤정훈(57)씨는 “목수로 27년간 일했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며 수입이 없어져 갈 곳을 잃었다”면서 “다운타운 홈리스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다 보면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봉사하며 건축업계에서 자수성가 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철 목사는 “경기가 어려워지며 머물 곳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지금은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라면서 “후원금이 줄어들어 재정이 힘든 상황이지만 뒷마당을 증축해 조금 더 수용인원을 늘릴 계획이다. 한인들이 관심을 갖고 뜻 있는 한인들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323) 810-0691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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