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니 통신(김혜자 통신원)
본 통신원은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영국 인근에 있는 아일랜드(Island)에 다녀왔다. 수도 더블린도 오래된 도시로 고층빌딩은 거의 없고 흑맥주 Guiness공장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흑맥주를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대규모 맥주공장의 추어를 하고 꼭대기 층에 있는 맥주 시음장 관망대에서 더블린 시를 360도 돌아가며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제일 유명하다
는 트리니티 대학을 둘러보고 그곳 도서관에 신약원본의 일부가 보관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블린에서 제일 오래된 술집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하고 중심가로 들어오니 술집마다 젊은 여자들이 파티 옷을 입고 남자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며 춤들을 추고 있었다. 매 주말마다 이렇게 노는 건지, 그 주말이 특별한 주말이었는지 확인은 못했는데 번화가에 있는 유명한 은행건물도 술집으로 바뀌어서 발 디딜 틈이 없게 사람들이 꽉 차서 술 좋아하고 노래부르기 좋아하고 발끈하기 잘하는 국민성도 우리네와 비슷하고 큰 나라 옆에 끼어 늘 침략당하고 독립투쟁 해왔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어서 늘 침략을 당해왔고 독립투쟁을 해왔던 역사도 비슷해서 노래도 슬픈 가락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싫어하지만 TV방송도 영국의 BBC방송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옛날 60년대 한국이 아직 잘 못살던 시절, 하루 막노동을 끝낸 가장들이 일을 마친 뒤 막걸리 집에 들려 막걸리 한 사발에 돼지비계를 구워먹고 인생을 위안 받으며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곳 아일랜드 사람들도 저녁이면 술집에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들 했다.
한국에서는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오동동 타령들을 불렀는데 악기들을 들고 모여 술을 마셔가며 노래를 불러댔다. 인구가 400만 명밖에 안되고 450만명은 외국으로 이민들을 가버렸다고 한다. 내가 동행했던 미국인 친구들도 모두 아이리쉬 이민자들의 후예인데 그들은 조상들의 뿌리를 찾고 싶고 부모 조상나라의 노래와 생활상을 보고 싶어 찾아간 사람들이었다.돌산에 농토도 별로 없고 풀들이 새파랗게 난 곳엔 양떼와 젖소들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이 6.25동란 후 나무를 다 땔감으로 베어 때고 민둥산이 됐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열심히 국민운동을 벌여 지금은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는데 아일랜드는 아직도 많은 산들이 돌짝밭이고 나무가 없었다.
술집은 댓집 걸러 하나씩 되어 저녁 6-7시면 모든 가게가 다 닫고 열린 건 술집뿐인데 술값도 맥주 큰 잔에 4.5유로를 하니 7달러 꼴인데도 모두들 술집에만 모여서 마셔대고 있었다.식당도큰 도시를 빼고는 따로 없고 PUB에서 생선 튀김. 감자튀김이 제일 흔한 메뉴였다. 웬만한 도시에는 B & B(Bed and breakfast)라는 여인숙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자기가 사는 집에 방들을 꾸며서 빌려주며 돈을 챙기고 있었다. 방 한 귀퉁이에 보통 미국집들의 옷장만한 곳에 조그만 싱크, 샤워장, 변기를 넣어 빌려주는데 뚱뚱한 사람은 문으로 들어가기도 힘들만큼 비좁았다.
대신 아일랜드에서는 어디든지 꼭 아침식사는 Full Irish breakfast라고 해서 베이컨, 쏘세지, 계란, 감자, 빵, 커피 등이 따라 나왔다. 한국인들과 국민성이 비슷해 쉽게 발끈하는 성질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친절했다. 아주 큰 국도를 빼고는 지도에 나오는 큰 길들이 미국집들의 개인집 차도보다도 좁은데 거기에 양쪽으로 돌담까지 쌓아놓아서 마주 차라도 오면 부딪칠까봐 진땀이
날 정도였다.
미국에 오니 이렇게 시원하게 길들이 뚫려 있는데 그들의 삶이 가난하고 국ㅌ도 척박하듯이 그들의 골프장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여기서는 잘 다듬어지고 넓은 곳에서 쉽게 골프를 쳤는데 그곳은 코스도 너무 너무 길고 좁고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비가 오다 말다 바람이 세게 부는 산꼭대기에 있어서 경치는 멀리 내다보며 좋았지만 유럽인 골퍼들이 왜 미국에 오면 그리 강한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동양인 관광객이 드물어서 인지 조그만 여자아이가 눈이 이렇게 찢어진 중국인이라고 놀리고 도망을 쳤다. 볼만한 성당이나 옛 성곽도 별로 없고 바닷가에 절벽은 볼만 했지만 몰려오는 비바람 때문에 등 떠밀리어 떠나야 했다. 마지막 날, Ennis라는 도시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 투숙했는데 미리 다 예약된 바와 달리 우리만 조그만 침대 둘이 있는 방을 주었다.
화가 나서 수퍼바이저 부르라고 이건 우리가 예약한 바와 다르다며 항의를 했더니 수퍼바이저가 와서 새 방을 보여 드릴 테니 마음에 드시는가 보라고 한다. 따라가 보니 그 호텔 최고특실인데 높은 천정에 샨드리에, 벽난로, 소파, 수퍼 킹 싸이즈 침대, 으리으리한 화장실, 탈의실 등 먼저 방의 5배도 넘는 방이어서 190유로(275달러)를 내는 것도 아깝지 않았다.같이 간 친구들이 방 구경을 와서 모두들 부러워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