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점과 지교회
테리야끼 식당업주인 친지가 근래 풀이 죽었다. 장사가 좀 될 만하니까 근처에 더 큰 테리야끼 식당이 생겼단다. 세탁소를 판 전 주인이 맞은편에 또 세탁소를 차려놓고 가격을 덤핑한다며 한숨 쉬는 업주도 있었다. 한인들의 경쟁의식은 유대인처럼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어서 누구도 못 당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이런 살벌한 경쟁이 80년대 중반 LA의 한국식품점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코리아타운에 대형 수퍼마켓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터줏대감이던 구멍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군소업주들이 수퍼마켓 앞에서 ‘약육강식’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마켓의 품질과 서비스가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1일자 본보 3면엔 대조적인 두 기사가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 페더럴웨이 한인교회 연합회 소속 목사 27명이 시애틀 형제교회에 페더럴웨이 지교회 설립계획을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는 기사가 톱을 장식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유니뱅크의 타코마 지점 개점식에 많은 인사들이 참석해 환영하고 축하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은행지점 개설을 주민과 상인들이 환영한 것은 당연하지만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들이 집단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심상치 않았다. 한인사회에 교회가 너무 많다는 푸념이 나올 때마다 목사님들이 즐겨 대꾸하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지노와 술집은 적을수록 좋고, 푸른 초장(교회)은 많고 넓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한인교회의 폐습 가운데 하나가 분란이다. 그동안 수많은 교회들이 쪼개졌다. 미국 내 최대 한인교회로 꼽혀온 LA의 동양선교교회는 담임목사와 당회가 3년여에 걸쳐 수백만 달러의 변호사 비를 퍼부으며 법정싸움을 벌여 한인사회를 진절머리 나게 했다. 결국 담임목사가 물러났는데, 동양선교교회는 지난 20년간 이런 큰 분란을 세 차례나 겪었다.
교회분란 폐습은 그동안 시애틀 한인사회에도 없지 않았지만 이번 형제교회 케이스는 다행이도 분란이 아니라 분가(分家)다. 형제교회 측은 매주 바슬까지 먼 거리를 달려 예배에 참석하는 페더럴웨이 지역 신도 100여명을 위해 현지에 캠퍼스(지교회)를 설립하고 권 준 담임목사가 본 교회 예배를 마친 후 오후에 내려가 설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을 본보가 보도한 후 필자의 한 친지는 “형제교회의 욕심이 지나치다. 시애틀을 장악했으면 됐지 페더럴웨이까지 넘보느냐”고 핀잔했다. 그는 “우수한 프로그램과 재력을 갖춘 형제교회가 페더럴웨이에 진출하면 그곳 군소 교회들이 문 닫는 것은 시간문제다. 좁은 바닥에서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이렇게 잡아먹을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그러나 신자가 아닌 다른 친지는 “목사들이 똘똘 뭉쳐 반대하고 나선 것은 노골적인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다. 큰 교회가 들어서는 것이 기존 군소교회의 목사들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일반 신자들에겐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 맛 좋은 식당이 손님을 끌게 마련이다. 페더럴웨이 신자들이 바슬까지 찾아가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며 반박했다.
이들 두 친지의 주장을 들은 필자는 LA 동양선교교회의 분란이 머리에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이유야 어떻든 형제교회의 지교회 문제를 둘러싸고 한인사회의 여론이 이들처럼 극명하게 양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한인사회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초래할뿐더러 가뜩이나 불황으로 시름하는 한인들을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아무쪼록 형제교회와 교회연합회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목사님들이 말하는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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