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학생에게 낯설었던 문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국은 하나’. 문과대학으로 오르는 긴 계단 층 사이에 파란색 페인트로 벽보처럼 새겨진 문구였다. 난생 처음 미국에 입국했을 때 대한민국 여권에는 ‘Republic of Korea’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미국 TV와 외국 친구들은 한결같이 ‘사우스 코리아’라고 불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역신문, CNN뉴스, 심지어 UN홈페이지에도 사우스 코리아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고 있다.
아무리 세계소식에 관심 없는 미국 시골동네라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남한에서 온 거야? 북한에서 온 거야?”라고 물어볼 땐 “사우스 코리아”라고 말하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위 ‘코리아’는 대한민국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계인들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살던 집을 떠나와 보니 눈에 안 보이던, 아니 잊고 살았던 분단국가라는 조국의 슬픈 현실이 훤히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후 일본 친구와 미국 친구에게 북한은 ‘미친 국가’라며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경멸조의 말을 들었을 땐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가슴 속에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출신의 아픔을 감출 수는 없었다. 미국의 한 언론은 한인들의 이런 심정을 “못된 삼촌은 밉지만 남의 집 사람이 삼촌을 욕하는 것은 싫어하는 심리”라고 비유했다.
1903년 1월13일, 미국에 온 초기 이민 선조들이나 1950년 한국전쟁을 겪거나 당시 외국에서 소식을 접한 이민 세대에게 조국은 하나였다.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의 전후 세대에게 조국은 하나일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700만 한인에게 조국은 하나인가 둘인가.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 세계 학계와 강대국들이 ‘냉전초기의 참혹한 대리전’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란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한국을 염려하는 학자연합(www.asck.org)의 미국 교수 59명이 올 가을부터 ‘한국전쟁 종전을 위한 교육’을 3년 동안 실시한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학자연합 회원이자 한반도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 “1910년 이후 고난으로 점철된 한반도, 코리아의 통일은 오직 한반도 주민들만이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되는 분단의 현실이 아직도 안타까운 이유다. 얼마 전 LA를 찾은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전쟁세대는 10년 안에 대부분 세상을 뜬다”며 당부한 “남과 북 후손에게 증오가 아닌 평화를 물려줘야 할 것 아닌가”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집 떠난 이민자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접고 ‘실용적’으로 바뀌길 바란다. 북한의 주민들도 자각해 민주화를 이루길 손꼽아 기다린다. 한국전 60주년을 지나며 새파란 대학 새내기 시절 보았던 ‘조국은 하나’라는 문구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김형재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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