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을 가슴에 담고 사는 지,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 보겠다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몸에 좋다는 약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는 십년은 더 살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뿐인가. 헬스클럽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러닝머신 위에서 달음질 선수처럼 달리고 또 달린다.
벌써 7월이다. 이 해도 절반이 지나간 시점에 시간을 실은 세월이란 이름의 열차는 자꾸 달려만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달려가는 그 기차를 막을 재간이 없다. 그저 세월이라는 기차에 실려갈 뿐이다.
고향 통영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동기생 중 생존해 있던 7명 중에서 또 한 친구가 갔다는 서글픈 소식이었다.
그는 1949년, 내가 연세대 의예과에 진학했을 때 경북대 의예과에 진학한, 나와 같은 길을 택했던 친구였다. 그리고 그는 나와는 달리, 그 길을 착실하게 밟아 개업의로 성공하고, 보건사회부의 보건국장으로 관직에도 몸담았다. 그런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92년, 그러니까 18년 전이었다.
당시 나의 수필집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있던 중학 선배와 동기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그 때 내 수필집을 받아 들고는 "넌 네가 좋아하던 연극과 문학의 길로 갔던 게 오히려 잘 했던 것 같다"라면서 쳐다보던 눈의 잔잔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억지로라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이지만, 친구의 죽음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세월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글 쓰는 일과 연극하는 일, 두 날개로 훨훨 날아온 나였지만, 이제는 연극이란 날개가 꺾이어 어쩌면 나는 날지 못하는 한 마리 늙은 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벽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색 바래 가는 초상화일지도 모른다.
늙었다는 것은 희망을 잃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패기로 가득했던 것이 나이 들면 그 용기와 도전정신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라디오에서 흘러간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내 여생이 아름답게 물든 저녁노을 같이 멋지게 매듭지어지기를 바라본다.
“잘 지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이 잘 활용한 인생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금언을 되씹어 보는 것이다.
주 평 / 아동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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