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 돌아보면 우리는 온통 공짜 속에서 살고 있다.
부산 피난 생활 중 영도에서 살던 때 일이다. 많은 섬 주민들이 좁은 언덕바지 땅을 갈아 주로 당근이나 파 농사를 지어 작은 단으로 묶어 이튿날 새벽 부산 자갈치 시장에 도매 값으로 팔아넘기고 왔다. 영세 농민들로 가난한데 그 가난함이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웃들이 한자리에 둘러 앉아 재미있는 농담으로 자기 물건을 단으로 묶으면서 행복해 했다. 전쟁 중이라 만물이 품귀 상태인 때에, 인분 퇴비 속에서 뚫고 올라오는 당근을 쓱쓱 치마 자락에 문질러 깨물어 먹는 재미로 가난을 잊어버리며 살았다. 빈손으로 몰려간 피난민들을 받아드려 방을 내어주고 귀한 물도 나눠 먹었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참고 우리를 보살펴준 형제들이다.
그해 여름 오랜 가뭄으로 이삼일 내로 비가 오지 않으면 채소 농사가 결딴날 뻔한 적이 있었다. 가뭄 날을 몇 고비 겪어도 비는 커녕 푸른 하늘에 매일 같이 불타는 태양만 작열하니 땅은 메말라 갈라지고 갈라진 구멍만 점점 크게 벌어졌다.
그리도 낙천적인 동네사람들도 이제는 할 수 없다, 망했다 하며, 밭머리에 나와 앉아 쩍쩍 갈라진 땅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당근 잎들은 누렇게 말라버렸고 이제는 비가와도 소용없다, 망했다 할 그때 어느 오후 바다 저 멀리 오륙도 근처에서 쿵쾅 쿵쾅, 번쩍 번쩍 번갯불과 함께 검은 구름이 서로 부딪치고 밀려가고 달려들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동네반장”이란 별명을 가진 아주머니는 우산을 쓰지 않고 그 비를 흠뻑 맞으며 행복해 두 팔을 벌리고 춤도 췄다. “우산 쓰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자 “아이다, 내 이 비 좀 맞구싶어 나왔다 말이다”고 외쳤다.
죽었던 땅이 살아나고 갈라진 구멍으로 푸른 새싹들이 살아 올라 왔다. 그 어린 것들이 농민들의 생명의 끈이 됐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나는 매일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들의 끈질긴 기다림과 메마른 땅을 보고 도울 힘이 없어 나 자신도 말라버린 풀같이 되어버렸다.
오랜 가뭄 후에 늦은 단비는 억만 금으로도 계산할 수 없으며, 그 값은 우리 힘으로는 감당치 못한다.
늦은 단비가 온 후 동네사람들의 기가 살아나,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비도 참 옹골지게 많이 왔제” 하며 여유를 부리며 마실을 다녔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변소에서 큰일을 보며 ‘엄마’ 하고 부르더니 “하나님이 사람한테 돈을 받고 공기를 팔면 우리식구들은 질식해서 죽을 거야” 했다. 어린 아들의 그 말을 듣고 “참 그렇구나, 그렇구나 맞아!” 하며 스스로 입이 봉해져 버렸다. 어린이들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더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공기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계시며,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 어린 아들의 말이 메아리로 가끔 귀에 울려온다.
고기잡이들이 저 바다 멀리에 나가 한 배 가득히 고기를 잡아 기쁨으로 어기여차 노래를 부르며 돌아올 때, 바다 거기 누구에게 돈을 주고 고기를 잡아오지 않는다. 고기는 공짜다. 오곡을 영글게 하는 기름진 햇살, 밝고도 아름다운 금빛 태양, 그 빛을 받지 않고 살아남을 사람이나 생물은 이 지구상에는 없다.
돈을 흔하게 쓰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돈을 물 쓰듯 쓴다고 한다. 물을 천시하는 말이다. 실은 물이 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귀한데도 말이다.
밥은 한 주간 동안 안 먹어도 죽지 않으나 물은 마셔야 산다는데, 그토록 귀중한 물을 장마비 또는 소낙비로 무작정 퍼부어 주신다. 비오는 날을 궂은 날이라 하고, 또 비 온다고 투정하며 불평하는 데도 불구하고 비는 쏟아진다. 사랑이다.
우리 생명유지에 직결된 필요한 것들은 다 공짜로 공급 받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