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2일. 덜레스공항을 떠나는 피터 문(24, 한국명 문태현)씨의 마음은 설랬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선교 활동을 위해 부모님의 나라로 향하는 길이었다.
막 신학교를 마친 그는 갓 결혼한 부인과 인천의 송도에 들어선 국제타운에서 영어권 목회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 비록 한국말은 서툴지만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고 교회 창립 준비도 착착 진행됐다. 모국에서의 가벼운 마음은 그러나 장기체류 비자를 신청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담당 직원은 “아버지가 언제 시민권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의 아버지인 문형철씨(버크, VA)는 아들 피터가 10살 때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 직원의 대답은 “출생신고를 먼저 하고 그 다음 병역문제를 해결해야 비자를 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피터의 출생 당시 아버지의 신분이 영주권자라는데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버지 문 씨는 법무부 난민국적과에 전화를 수십 차례 걸었다. “아들은 미국서 나고 자라 한국말도 서툴고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데다 미 시민권자인데 어찌 한국 군대를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얘기해도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피터 문씨는 출생 당시 아버지의 국적이 한국인 관계로 선천적 이중국적자라 병역의무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문형철 씨는 다시 경기 병무청에 전화를 했다. “반드시 군대에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병역의무를 해결해야 합니다.” 역시 답변은 같았다. 문씨가 계속 항의하자 “원정출산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라 재외 2세들이 해당되지 않는 점은 이해하지만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왜 국적이탈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국적이탈이나 선천적 이중국적법이란 게 있는 줄 어느 해외동포가 알겠습니까. 정부가 홍보도 제대로 안하고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악법을 만들어 집행하고 있는 겁니다. 아들을 한국의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는데 병역의무를 하라니요? 제 자식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제 억장도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닥친 그와 아들은 목하 고민 중이다. 그들에겐 두 가지 길이 주어졌다. 선교활동을 중단하고 귀국하는 것과 출생신고를 한 후 병무청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결심은 쉽지 않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당장 귀국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장기 거주할 집도 얻었으며 창립예배를 앞두고 있는 등 할 일도 많아 짐을 싸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렇다고 출생신고를 하고 병역의무를 해결한 후 장기체류 비자를 얻는 선택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문형철 씨는 “원정출산과 재외교포들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법을 무작정 일괄 적용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시대와 해외 인재를 떠들지만 어느 재외동포들이 자녀를 한국에 보내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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