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의 아버지로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를 들지만 동양인들에게는 명의라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화타’가 먼저 기억난다. 2,000년 전 사람인 화타는 중국 한나라 말기의 의학자로 마비산이라는 마취제를 사용하여 외과 수술을 감행한 세계 최초의 외과의로 ‘신의’(神醫)라 불린다.
침술, 치료, 외과수술 등 모든 솜씨가 뛰어났지만 그가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관직을 마다하고 백성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프고 병든 자를 살린 점이다. 화타의 이런 정신은 오늘날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의 정신과 같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파리에 본부를 둔 대표적인 민간재단으로 ‘의사는 적군, 아군이 아닌 다만 부상병을 치료한다’는 인도주의 기구이다.
오늘날도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모인 3,00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케냐, 소말리아, 하이티 등지의 전쟁터나 기아, 질병, 자연재해 지역에서 의술 활동을 펴고 있다. 얼마 전 본보에 하이티에서 자원봉사 하는 여의사에 대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그 의사는 작년 1월 발생한 하이티 지진 재난 현장에서 하루 12시간 주 7일 꼬박 쉬지 않고 에이즈와 결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그 지역에 사는 한인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생 전문직 갖고 돈 많이 벌라고 내 아들 의사 시키려 하는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어쩌냐?’ 는 것이다. 그 아들이 한국 신문을 읽을 정도면 교육을 잘 받았네 하면서도 의사는 사람 살리는 일이 먼저 아닌가 했었다.
그 며칠 후에는 아주 가까운 이가 상담을 해왔다. 작년 5월 약학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딸이 엄청난 연봉을 받고 최고 의료기관에 취직하여 한시름 놓았는데 갑자기 ‘올해까지만 직장에 다니고 내년 1년간은 제3국의 NGO에 가서 자원 봉사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준비단계로 ‘내가 의료봉사를 잘 해 낼 수 있을 지 미리 체험해보려고 이번 10월 휴가에 하이티 재난지역으로 가려고 한다’는 말에 격려 이전에 걱정이 먼저 된다는 것이었다.
‘분쟁지역이나 가난하고 못사는 곳에서 의료봉사나 선교활동 하는 사람이 신문기사에 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감탄했는데 그게 내 자식 일이 되고나니 일단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미국에는 정부와 관계없는 민간 국제단체가 수없이 많다. 엠네스티를 비롯해 자선단체와 환경, 에너지 단체뿐 아니라 사회봉사로 영역을 넓힌 대형 교회들이 선교센터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기관도 많다. 이들에게 ‘편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하는 대답이 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여 의료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보람 있다. 그런데 이 일이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또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 그들은 사명감과 더불어 뚜렷한 소명의식, 그 일을 함으로써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인 그녀는 말한다. ‘그냥 때가 되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일 년에 한번 좋은 곳으로 휴가 가면서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자’고 주장하고 싶지만 판단과 결정은 딸아이에게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어느 정도 있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평소 남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쳐 온 처지지만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이율배반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흉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터 한구석에서 수술을 하는 당사자는 행복할 지라도 멀리 오지에 보내놓고 잠 못 자는 부모 마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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