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한국 시단에서는 장황하고 난해한 시가 유행이라고 한다. 특히 ‘미래파’ 시인들의 시가 그렇다고 한다. 무척 난해해서 읽고 또 읽고 다시 한 번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끝내는 ‘에이, 내가 무식해서 그렇겠지!’ 하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런 어려운 시 이해하느라고 낑낑거린다고 내 삶이 더 윤택해지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면서도 혹시 시인들이 어려울수록 좋은 시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오늘날 시의 위기는 독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쉬운 시 쓰기 운동이 일어났을까!
이런 경향에 반대해, 짧고 간결한 ‘극서정시’를 주창하는 오세영, 유안진, 조정권 등 시인들이 계속 시집을 내고 있어서 화제다.
얼마 전 극서정시집 ‘밤하늘의 바둑판’을 펴낸 오세영 시인은 “시의 영원성과 보편성 등은 뒷전에 두고 자본주의 논리에 편승해 시선 끌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충격, 해체, 자해, 폭력, 패륜 등과 같은 게 현대미학의 양상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어요”라고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를 비판한다. “읽히기는커녕 난삽하고 정신병자의 넋두리 같다. 바람을 일으켜 문단 이슈가 되지만 3, 4년이 지나면 싹 사라진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서울대 교수로 많은 제자를 길러낸 원로시인의 말이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 시인이 말하는 ‘극서정시’란 짧고 간결한 시로 소통 가능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 아주 명징한 시라고 한다.
시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고매한 예술이다? 틀린 말인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시인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중가요 가사 같은 것을 아주 하찮게 여기려 든다. 시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우긴다.
실제로 대중과 소통하고 감동을 주는 면에서는 유행가 가사가 한 수 위 아닌가? 물론 터무니없는 사랑타령, 이별타령이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성이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밥 딜런은 꽤 여러 해 계속해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고, 닐 사이먼의 노랫말은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가수 한대수는 미국시인협회가 인정하는 당당한 시인이고, 김민기의 노랫말들은 거의 모두가 빼어난 시다. 아침 이슬도 그렇고, 작은 연못, 봉우리, 늙은 군인의 노래… 모두 절창이다. 극작가 양인자가 지은 노래가사들, 조용필의 ‘꿈’의 노랫말 등도 좋은 시다.
어디 그뿐인가 흘러간 옛 노래들도 가사가 주는 감동이 만만치 않고,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령,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던 뱃사공이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 피눈물을 흘리다가, 눈 녹은 삼팔선 지키는 이등병이 되어 목숨 바쳐 싸우다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다… 이것이 곧 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시인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시인이여, 시 좀 쉽게 쓰시라! 시는 사랑이요, 위로요, 기쁨이요, 구원이라면서 혼자서 아는 말로 중얼거려서야 되겠습니까!
“시 어렵게 쓰지 마라. / 너는 한 번이라도 읽고도 못 알아먹는 독자의 슬픔을 /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장 소 현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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