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뉴욕은 나의 치열한 미국정착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다. 부모님이 계셔서 잠깐 거주했던 하와이의 낭만과 남태평양의 보드라운 미풍과는 전혀 다르게 뉴욕의 겨울은 춥고 매서웠다.
짧은 영어에 자동차, 직장, 돈도 없었고 의료보험 또한 물론 없었지만 꿈이 있었다. 요즘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한 그릇의 밥과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마 그 시절의 고생 때문인 것 같다. 언어의 장벽과 여러 인종사이에 끼어 두배, 세배의 일을 하느라 몸은 피곤했었으나 나는 뉴욕에서 이민자의 꿈을 조금씩 이루어 갈수 있었다.
내가 그때 뉴욕에서 살아남아 내과, 신장과 전문의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미국 사회의 너그러움과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뉴욕 병원 수련의 과정 때 딸아이가 태어났다. 틈틈이 주말에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센트럴 파크에 갔었다. 공원 안에 있는 호숫가에 거위들이 놀고 그 옆에서는 거리의 악사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켰다. 옛날의 영광을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따스한 햇살에 잠드는 아이를 보면서 나와 아내는 한없이 행복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딸이 어릴 때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앙금으로 남는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와서 아이를 안고 있노라면 따뜻한 체온 때문에 내가 먼저 골아 떨어지고 아이는 내 배위에서 울어제끼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내 품에 있던 딸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Reading Partners 라는 단체에서 일을 한다. 어릴 때 계발된 책읽는 능력이 한 개인의 학업능력과 사회 적응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Reading Partners 라는 단체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초등학생들 중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 기업과 개인으로 부터 기금모금을 하고, 관심있는 학교와 연대하여 선생님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한 뒤 방과후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다.
딸은 작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을 하더니 Reading Partners의 프로그램이 활발하여져 그 일을 확대하려고 뉴욕으로 왔다. 유난히 어릴 적부터 책을 사랑하고 읽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들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딸에게는 잘 맞는 일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지냈던 나의 미국에 대한 신세를 딸이 갚아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딸은 뉴욕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인 브룩클린과 맨하탄을 이어주는 브룩클린 브리지를 건너서 출퇴근을 한다. 1870년도에 시작하여 13년이나 걸린 이 다리는 설계자 로블링 부자가 모두 목숨을 잃어버린 희생 위에 세워졌다. 나와 아내는 딸아이와 같이 이 다리를 걸었다.
다리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석양에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20여년전 하고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며 ‘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그 노래의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 힘든 시기가 닥쳤지만 주위에 친구가 없을 때 내가 엎드려 험난한 물살위에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어둠이 몰려와 주위에 온통 고통으로 가득찰 때 내가 엎드려 험한 물살위에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나는 내가 이민의 꿈을 이루어 간 이곳에서 딸이 자유와 꿈을 키워가며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단단한 다리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김홍식(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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