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춘
시문학회 회원
지금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죄의식마저 든다. 선생 님 생전에 잘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정옥희 선생님은 나의 국어 선생님이셨어”하고 자랑 하며 살아온 나.
선생님은 나의 첫 시집 ‘바람의 짓’ 평 을 써 주시기도 했다. 늙은 제자의 등을 쓸어 주고 머리 를 쓰다듬어 주시며“ 그래, 좋은 글 많이 써요” 하셨다. “저녁 대접을 하고 싶어요” 하면 선생님은 늘 “그러지 마. 바쁜데 이다음에 하자”며 줄곧 피하곤 하셨다.
몇달 전 선생님의 출판기념회 소식을 듣고 “제게 책 한 권 안 주실래요?” 했더니 그때는 선뜻 “그래, 데이트 한 번 하자” 하셨다.
책을 우편으로 부쳐 주려다 직접 만 나고 싶어 그만 두었다고 하셨다. 그때 뵈니 “늙으니까 아픈 곳이 늘어”하실 뿐 자세한 말씀이 없으셨다.
얼굴은 수척해도 스타일은 항상 그대로 여서“ 나이 드셔서 그러시겠지” 했다. 선생님은 그때 다시 못 볼 것이라 예상하셨던 것일까? 그토록 안 만나 주시더니 그날은 LA 까지 나와 만나주 셨다.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선생님, 무얼 드실래요?” 했더니 간단하게 먹자고 하 셨다.
그리곤 내 손을 잡고 마켓 안의 식당으로 가셔서 떡볶기를 사고 김밥을 사셨다. 돈도 재빨리 지불하셨다. “참 먹고 싶었어. 아이들이 매운 거 먹지 말라고 해서 못 먹었는데 자네를 보니 갑자기 회가 동하는 구나. 옛날 학교 앞 떡볶기 집에 학생들이 몰려 있으면 사감 선생님 과 같이 가서 수첩에 학생들 이름을 써들고 돌아 섰지만 실은 그때 나도 무척 먹고 싶었어.” 말씀하시는 선생님 눈가에 순수하고 아련한 향수가 반짝하고 퍼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중국집에 몰려 앉 은 학생들을 단속하러 갔다가 오히려 같이 앉아 먹으며, “얘들아 정말 맛있구나” 한 적도 있다고 하셨다.‘ 젊으셨 던 선생님, 왜 안 그랬을까’ 생각하며 나도 같이 웃었다.
언젠가‘ 4.19를 보내며’라는 글을 써 오라는 숙제를 내 주셨을 때였다. 숙제 안 해온 학생들에게 운동장 가장자 리의 풀을 뽑으라는 벌을 주시면서 “잘못 가르친 나도 벌 받는다”며 선생님도 같이 풀을 뽑으셨던 기억이 난다.
숙제를 안 해오면 점수를 깎는 것이 아니라 덤으로 글 한편씩 더 써 오라던 선생님, 그래서 우리 말썽꾸러기들 이 감히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된 것 같다. “애들아” 불러주시던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 이제 언 제 다시 뵐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 서운해서, 서운해 서 마음이 무겁다.
“선생님, 가신 곳에서는 숙제 내주시지도 마시고 하지 도 마세요. 그저 평안히 잘 계십시오. 저희들의 영원한 국어 선생님, 정옥희 선생님.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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