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이 벌써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이 나이의 비례하여 점점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무섭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빠른 시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를 길들이고 속이고 있는 시간의 속성이다. 시간은 끝도 없이 순환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같은 일을 끝없이 반복한다.
혹, 거기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일이라도 하려 치면 시간은 어김없이 이렇게 속삭인다. “내일 해.”라고.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속아 미루고 또 미루다 포기한다. 내일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그런데 사실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아주 멀리 있는 줄 알았더니 자고나니 오늘 이더라” 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일은 오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푸념하고 좌절한다. “사는 게 뭐 이래, 재미없어, 왜 똑 같은 것만 계속해야 해.”
연말이면 자주 울려 퍼지는 음악 중에 이런 시간 속의 인생을 아주 빼어 닮은 곡이 하나 있다. 파헬벨이라는 작곡자의 ‘캐논’이라는 곡이다.
‘캐논’의 뜻은 쉽게 말해 돌림노래이다. 처음 제1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시작하면 제2 바이올린이 그대로 따라하고, 다시 제3 바이올린이 계속해서 똑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여 따라하는 형식이다.
물론 이 돌림노래가 인생을 닮아 있기도 하지만, 정말 닮아 있는 것은 저음을 담당하는 첼로 파트이다. 첼로는 이곡에서 오로지 여덟 개의 음만을 연주한다. 리듬조차 변하지 않으며 곡이 시작해서 끝날 때 까지 오로지 여덟 개의 음을 28번 똑같이 반복할 뿐이다.
똑같은 음들을 똑같이 반복만 하다가 끝나는 음악, 참으로 인생을 빼 닮지 않았는가.
오래전에 무표정한 얼굴로 이곡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친구에게 왜 표정이 그러냐고 타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렇게 반복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음악을 연주할 때, 분명히 첼리스트는 지루할 것이다. 아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할수록 없어질 것이다. 또는 왜 나는 이런 것만 해야 해 하는 불만이 가슴에 가득 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연주는 아름다워야 하고 행복해야만 한다. 듣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단순한 반복 속에 아름다움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한음 한음이 살아나게 할 수 있을까 연구를 해야 한다.
내가 속해 있는 연주 팀 ‘소나타 다 끼에자’는 이번 크리스마스 연주회에서 이곡을 연주한다. 바쁜 연말이지만 음악회를 가보려는 새로운 시도는 우리의 시간을 아주 조금은 의미있게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닮아있는 이 곡을 들으며, 여덟 음만을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다 보면, 우리가 가졌던 질문의 해답이 불현듯 떠오를 지도 모른다.
이정석/ 음악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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