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크지 않은 정원에 국화꽃이 피고, 코스모스가 피어 날 때면 매년 느꼈듯이 가을이 다시 찾아오는가보다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가랑 잎 떨어지는 나무 밑을 걷는 것을 상상해보며 마음의 쓸쓸함을 느껴 본다.
코스모스 한 송이가 여덟 잎의 깨끗한 꽃을 피우며 바람에 살랑이고 있으니 그 어느 여인의 마음인들 흔들어 놓지 않으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찾은 학교 본관 앞의 조그마한 연못 주위에도 코스모스는 많이 보였다.
젊기에 청춘이라 하든가. 즐겁기에 젊음이요, 희망으로 배를 채우기에 청춘인가 보다. 그러기에 대학 시절을 아름답게 보내는 사람은 일생을 아름답게, 즐겁게 보낸다는 말이 아닐는지.
영국의 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대학이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대학이 진리의 본산일 뿐만 아니라 인생 행보의 초보이기 때문이요,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절을 여기서 보내기 때문인 것으로 믿는다.
진리 탐구의 장소 대학에 다시 돌아오니 일 년 반 전 입학식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처음 입학을 할 때는 그저 젊은이들에게는 누구나 거처가야 할 자연스런 장소인 것으로만 느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돌로 쌓여진 건물을 바라보니 그 돌 하나하나가 진리로 보였다.
진리가 저렇게 쌓여 대학이라는 이름이 되었으니 진리를 찾아 뛰어야 할 곳이 이곳이요, 우정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고, 충효를 습지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하니 하버드 대학 정문에 쓰여 있다는 ‘진리(VERITAS)’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나도 이제 학점 따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진리 탐구라는 명제 아래 공부를 해보자 마음을 다짐 하고 열심히 학급에 출석 하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봄의 기운이 찾아오고 있었다.
가랑잎을 발로 툭툭 차며 마음으로는 봄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으니 좀 어색한 느낌은 있었지만 간간히 행복감을 느껴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 앉아 공부를 하던 친구가 학교 정문을 지나 조금 나가면 소나무 다방이 있는데 거기서 잠깐 만나자는 메모를 넘겨준다. 그것을 읽어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무안을 당한 듯, 남의 물건을 훔친 듯,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다방에서 만나자는 것인지.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 볼 수도 없고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교수님의 강의가 머릿속에 남아 주지 않고 바람처럼 그저 스쳐 지나갔다. 강의가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매일같이 자리를 잡아주는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친구가 아니면 매일 맨 뒤에 앉아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공부는 다 한 것이 되고 말 판이었다.
여러 생각을 하다가 다른 친구 하나를 데리고 나가기로 하고 같이 그 곳으로 나갔다. 처음 학교 밖에서의 만남이다. 예기치 못한 다른 친구까지 있어 그런지 생각 보다는 밋밋한 만남이었다. 교실이 아닌 사교장(?)에서의 첫 대면이라고나 할까? 그저 웃고 조금 더 서로를 아는데 그친 만남이었다. 한 시간 지나갔을 즈음 내일 다시 강의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서는데 마침 그 다방이 이층에 위치하고 있어 출입구에 나무 계단이 열두 서너 개쯤 있었다.
처음으로 친구와의 다방 출입이고 너무나도 많은 상상을 해서인지,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하이힐을 신은 다리가 삐끗 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창피한 마음이 들어 ‘아야’ 소리 한 번 내 보지 못하고 재빨리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걸어서 전차 역까지 갔다.
집에 돌아가 아이스 찜질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웃음만이 계속 된다. 한 반 학생과의 차 한 잔에 그렇게도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결국에는 발목에 상처까지 입은 일,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젊음의 흔적이요, 청춘의 찬가인 것 같다.
정영희
중앙결혼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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