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은 신체적 장애를 뛰어넘어 교수로, 문필가로 활동했고,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희망과 용기의 메세지를 전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정영희 교수의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나오는 질문이다. 어떤 여인이 무의식중 하나님앞에 서있다고 느꼈을때 근엄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고, 질문자와 대담한 내용의 글인데, 중병을 앓던 여인은 그 후 병이 치료되고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 학벌, 용모 또는 재산이나 업적 등 가시적인것들, 또한 종교나 인척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내면적 모습은 어떠한지 질문하고 있어, 한마디로 대답하기 참 벅찬 질문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만 하는 질문이라 생각된다. 만일 자기 인생을 바람부는대로, 흐르는 물결대로 흘러가지 못하게 하고 싶다면 말이다.
내 자신이 만일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쩌면 “설익은 감자”, 또는 “반쯤 구어진 빵”이란 대답을 했을지 모른다. 생애동안 뜨거운 정열을 쏟아부어 전 인생을 걸며 추구한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늘 무거운 회색 그림자로 내 가슴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인생의 경륜에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 만큼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것은 없다는 결론이다. 이 사랑 역시 조금 그 모양만 있고, 흉내만 내고 살 뿐, 자신 전체를 던져 사랑하며 사는 삶, 그래서 그 사랑의 능력을 체험하고 사는 삶이 못됨을 솔직히 인정한다.
공지영씨가 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을 요사이 두번째 읽었는데, 아무도 겉모습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교도소를 찾아가 재소자들과 미사도 드리고, 여러가지 친절한 봉사도 하고, 선물도 주곤 하던 자매가 있었다. 하루는 미사가 끝나고 한 사형수가 그 자매의 손을 덥석 잡았는데, 그때 그 자매가 준 눈길과 표정은 벌레를 보는듯 하고, 더러운 짐승을 보는듯 해서 그 여자는 그 사형수를 울게 만들었고, 그 영혼을 짓이겨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소설 이야기지만, 우리의 위선과 종종 겉모양만의 보잘것 없는 사랑을 들추어 놓았다. 사랑의 모양, 경건의 모양은 갖추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진정 그렇게 살아간다는것은 평생 훈련작업이 필요하다.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이 특별한 계절에, 그분의 이땅에 오심은 한마디로 죄인된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전체의 내용은 인간의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인간과 인간끼리의 사랑의 교훈, 그리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느정도까지 사랑해야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라고 했고, 요한 사도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것이 마땅하니라”(요한1서 3:16) 라고 했다. 이 세상에는 진정 이 말씀대로 안락한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전 생명을 바쳐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시간, 재물, 재능을 이웃을 위해 써야만 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죄로 어두어진 인간의 영혼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이 낮은 땅에 오셔서 참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를 기리는 이 복된 계절에 만일 우리 자신이 나는 남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 꽤 괜찮은 사람, 그래서 남의 인정과 박수갈채를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은밀한 마음속 깊은 곳을 맑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세히 비추어 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으면 좋겠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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