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9살 난 우리 아이에게 물었다. “현민아, 넌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다고 믿니?”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믿지요.” 나는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믿니?” 아들 녀석은, “그렇게 믿어야, 선물을 받지요.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없다고 믿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잖아요!” 나는 그 후에 할 말을 잃었다. 아들 녀석이 진짜로 산타가 있다고 믿을 만큼 다행히 아직은 순수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아빠한테 말하면 아빠가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깨지 않기 위해서 선물을 사다 준다는 전례(?)를 잊지 않고 이용하는 영악성을 발휘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아이가 방을 나가고 난 다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들아, 그래 산타는 계속되어야 하겠지.”
그렇다. 산타는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 ‘왜 산타 할아버지는 죽지 않을까’라는 어릴 적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어떤 어른도 주지 못했던 것처럼, 산타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있어야만 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산타의 행위는 이 지구상의 멸망이 올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산타가 기독교의 명절 중 하나인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니다. 엄연히, 예수님께서 이 절기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교묘한 상술과 얽혀서 산타가 엉뚱하게 성탄절의 주인공이 되고만 사연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른다. 사실, 산타는 계속되어야만 한다고 열을 내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로 교회에서 했던 연극에서 선물을 주었던 산타클로스의 웃음과 그때의 분위기를 영원히 간직하고픈 갈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산타는 일상 생활로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그래도 무언가 위안을 준다. 12월에만 나타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마음 설렘과, 바로 그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다림의 마음이 바로 산타가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삶의 활력소 아닌가. 비록, 어릴 적 우리들 각자가 그려 보았던 산타, 오늘도 몰에 가면, 부모들의 가벼운 지갑을 그나마 털어버리는 ‘사진 찍는 산타’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웃의 어려운 살림의 위기를, 쓸쓸하고 허전한 이웃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 해를 마감하는 이 한 달만이라도 우리 각자가 모두 산타가 되어 보면 어떨까. 산타가 나에게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산타가 되어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기다리는 가족이나 이웃들을 찾아가보자. 언젠가 시대가 더 악해지고 기계화되어, 산타 할아버지조차도 자신에 대한 낮은 자아감으로 상처받을 그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선물꾸러미를 놓은 사람이 바로 아빠, 엄마, 남편 혹은 아내, 딸, 아들인 것을 뻔히 알더라도, 우리 모두 산타가 되자.
올 한 해 얼마나 살기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는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받지는 않았는가. 실패와 좌절 속에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잃었는가. 또 하나의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 주위에 산타가 있음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서자. 어쩌면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도 우리에게 ‘산타’로 오신 것은 아닐까. ‘희망’과 ‘구원’의 선물꾸러미를 들고서 성령의 사슴을 타시고 말이다.
장보철
워싱턴 침례대학 상담학 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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