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굶주림에 지친 수많은 인민들만 남겨두고 지난주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37년 북한을 철권 통치하며 수백만 인민들을 굶겨 죽인 그가 텅 빈 곡간과 핵무기만을 남겨둔 채 돈 한푼 챙기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그가 광적으로 집착했던 벤츠 승용차 한 대 가져가지 못했다. 즐겨 마시던 프랑스 보르도 와인 한병 품지 못하고 주지육림을 뒤로 한 채 죽었다. “인민 사랑에 건강도 돌보지 않고 현장 시찰의 강행군을 하다가” 죽었다는 그가 어떤 유언을 남겼을 까. 아마도 핵무기와 그가 소장하던 수만 편의 영화, 수만 병의 와인들, 500여대의 벤츠를 내다 팔아 배고픔에 지친 인민들을 먹여 살리라는 ‘신기 어린 예지’를 통해 신신당부하고 갔을 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세계 수령’ 김정일은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들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 앞섰던 북한의 경제가 지금은 한국의 3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1년 1,115달러였던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에는 1,050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 20년간 뒷걸음을 거듭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말이다.
90년대 중반 2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북한 인구의 10분의1에 해당하는 숫자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이은 김정일은 군을 우대하는 ‘선군주의’를 내세워 체제 유지에 안간힘을 썼다. 국민은 굶어도 군대는 배를 불려야 쿠데타 등 정변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의 경제가 무너져 내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장과 농장 등 국가 경제의 알짜배기 산업을 떼내 공산당 산하에 두고 당심과 군심 장악용으로 삼았다. 경제가 어렵게 되자 자신을 ‘전지전능’으로 과신하며 ‘속도전’ 등 다양한 구호를 만들어 인민들의 등을 떠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110만 대군에만 집착했고 LA까지 날아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민생 보다는 대외 협박과 과시용 정책만을 고집했다. 그 결과 북한의 국제사회 고립은 더 심화되고 그럴수록 국가 경제는 피폐돼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고통으로 되돌려졌다.
인민들에게는 남한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며 마치 당장이라도 북침을 당할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했다. 배고픔도 국가 방위를 위한 군사 강국의 실현을 위해서는 충분히 참아내야 한다는 식이다. 국가 경제가 피폐되고 인민들이 죽어가는 동안 자신은 온간 산해진미로 배를 채웠다.
육영수 여사 저격, 판문점 도끼만행, 버마 양군 테러, KAL기 폭파 등 테러를 서슴지않았다.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연평해전, 서해 교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을 일삼았다.
김정일은 김일성 100주년 생일인 2012년을 ‘강성 대국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강성 대국 진입을 알리는 축제 분위기 연출을 위해 대학 휴교조치로 학생까지 동원해가며 다양한 건설 공사를 강행해 오고 있으나 성과가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이 중국과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한 것도 이를 위한 경제 협력과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구에 바닥난 경제로 강성 대국을 이끌려니 오죽 힘이 들었을까.
지금 한국 정치권이 김정일 조문 논란으로 시끄럽다. 1974년 북한 통치 이후 수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인 김정일이 과연 사후 조문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홍자성의 어록 채근담의 교훈을 떠올린다 해도 그의 영정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하나님께 불쌍한 영혼을 거둬 달라고 기도할 가치가 있는지 말이다.
지금도 북녘 땅 어딘가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삼촌, 고모, 이모들, 또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사촌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생각한다면 김정일의 죽음에 애도를 보낼 마음은 추호도 없다.
<김정섭 부국장·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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