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야. 잘 지내지?”
엊그제 가디나에서 작은 운송업을 하고 있는 학교 후배가 새해인사를 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이 후배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뜸 “그런데 형, 올해 새해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달라진 거 느끼는 것 없어?”라고 묻는다.
“달라진 것? 새해인사를 하면서? 글쎄...” 뜬금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내 목소리가 답답했는지 곧바로 자신이 말을 이어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번 새해 인사를 할 때면 꼭 나오는 대화의 단골메뉴가 ‘올해는 모두 잘 풀릴거야’라는 격려성 멘트였는데, 올해는 신기할 정도로 이런 말을 거의 듣지 못한 거 있지. 자바시장 친구들도 모두 죽겠다는 소리만 해대고. 사람들에게서 희망이란 것이 실종된 느낌이야”라며 허탈해 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은 현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선방’이란 얘기를 친구,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그 이상의 긍정적인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에 치이고, 치인 탓일까.
지난 연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신발을 사주러 갔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큰 녀석이 이상할 정도로 별로 탐탁해 보이지 않는 신발을 사겠다고 고집하는 것이었다. 아빠가 사주고 싶은 것과 큰 아이가 고집하는 신발의 가격을 보니 제법 차이가 많이 났다. “괜찮아, 아빠 돈 많아”라며 구슬려도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가 왜 그랬을까?”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할 정도로 벌써 컸나?” “내가 아이들 앞에서 돈 얘기를 너무 많이 했나?” 별별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겨울방학을 시작하기 전 때마침 남은 휴가를 집에서 보내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면 픽업했던 일이 기억난다.
학교 일은 거의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떠맡기던 아빠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아이들에게는 무척 이상하게 보였는지, 하루는 집으로 오는 길에 한 목소리로 “아빠는 왜 일하러 가지 않아?” “직장을 잃었어?”라고 물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매일 보는 부모의 말과 표정, 행동을 통해 집안 사정에 대해 감을 잡는 자신들만의 눈치 경제학을 터득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임진년 새해가 시작됐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일반 서민들에게는 올해도 쉽지 않은 해가 될 것 같다.
이럴 때 일수록 그래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여유와 희망이다. 부모가 건강하면 아이들도 건강해진다. 거꾸로 부모의 짜증스러운 모습, 기운 빠진 모습에 아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족이 함께 어울리며 웃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을수록 가족애는 깊어진다. 그리고 이는 곧 생활의 에너지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 계산법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부모를 보며 배우고 따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란 20년 전 대선의 이슈가 여전히 유효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가정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여러 가지 새해결심을 다지는 지금, 가족이 하나 되는 일을 위한 약속을 하나쯤 포함시키는 것은 어떨까. 아이가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 곁에서 같이 책이나 신문 읽기, 주말에 함께 산책하기, 주말에 한 시간이라도 대화 나누기 등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황성락 특집2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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