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이 밝아왔다. 새해 새날은 올해도 어김없이 나의 결핍을 지적해 준다. 점검해보라는 메시지를 고맙게 받는다. 다짐하고 결심한다. 나의 새해 하늘에는 더 웃자, 더 걷자, 더 칭찬하자, 더 조심하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 등의 깃발이 펄럭인다.
빠빳한 새 세배 돈을 마련하려 들린 거래은행은 삼백육십오일 어치 그 소중한 시간을 열두 장의 달력에 담아 인심 좋게 고객 가슴에 쏟아 부어준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푸릇푸릇 아무도 밟지 않은 싱싱한 날들이 안겨온다.
‘복 많이 받으세요’는 참으로 정답고 많이 들어 익숙해진 신년 인사다. 2012년은 용해, 새해인사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복 많이 누리세요’ 라고. 이미 받은 복을 인정하고 그 복을 잃지 말고, 잊지 말고 누리라는 환기의 인사가 더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자고로 복은 언제나 받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늘에서 땅으로, 위에서 아래로 또 조상이 후손에게 등등, 그렇다면 복을 관리하는 누군가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온 의식구조는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어서 탓할 생각은 없다.
만약에 줄 사람은 생각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궁리라면 좀 무안하고 멋 적어 지지 않을까 싶은 기우도 생긴다.
복을 빌고 복 받기를 바라며 살아온, 그야말로 복에 허기진 우리의 과거가 아니었던가.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고전적 복의 개념은 이렇다.
첫째는 수(壽, 오래 사는 것) 둘째는 부(富,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 셋째는 강령(康 寧, 육체적으로 또 마음으로 건강히 편안하게 사는 것) 넷째는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는 일상적 태도로써 선행으로 덕을 쌓는 것)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 고통 없이 생을 마치는 편안한 죽음) 등 오복이다.
기독교적 접근의 복은 푸른 잎사귀와 과일을 내놓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시편은 천명한다. 복은 스스로 내놓은 만큼 돌아온다.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흘러넘치는 복은 누군가가 복의 씨앗을 이미 뿌렸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받아서 누리는 것이다. 누리는 만큼 감사하고 베푸는 만큼 기쁜 것이다. 이것이 심는 대로의 법칙(갈라디아서 6:7)이 적용되는 삶이다.
우리는 이미 복 주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축복 테두리 안에 있다. 그가 피 흘려 지불한 대가를 우리는 지금 복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그가 준 복을 세어보면서 감격하는 작은 가슴이면 족하다. 그 다음 감사는 자연발생적으로 오는 생명적 순서이다.
금년 용해에는 우리 모두 베풀고 내놓는 ‘복의 출발’에 참여하여 소망과 기쁨을 세며 누리기를 바라는 절절한 마음에서 ‘복 많이 누리세요’ 라고 외쳐보면 어떨까. 바로 복 있는 자의 삶 한 복판에 서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어렵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김영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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