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섭리에 의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에 생일이라는 날짜가 붙는다. 바로 축복 받으며 태어난 날이다. 매년 우리 모두들 생일을 맞이하며 감회와 짙은 향수를 느낀다.
더욱이 한국인은 누구나 생일하면 미역국을 연상한다. 건강히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미역국을 먹였으리라.
나의 어린시절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남겨 주셨던 것 같다.
어린 학창시절 운동화를 사서 신으면 얼마 가지 않아 떨어지고, 헐어 신지 못했던 신발들 때문에 튼튼하고 만년먹기인 군화들을 신고 싶어했다. 그러나 군화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나의 생일선물로 군화를 받았다. 기쁨 마음으로 닦고 문지르고 하여 반짝 반짝 빛나는 구두가 되어, 졸업할 때까지 오래 오래 신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생일, 중요한 날이다. 그러나 생활에 쫓기다 보면 가족들의 생일을 잊고 넘기는 때도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초라하고 조촐한, 의미 없는 생일을 보낸 해도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자랑스럽게 알리길 좋아하는 이곳 문화가 생일을 알리기 싫어하는 우리 생활문화와 달라 나는 당황스러웠고 의아해 했다. 이곳에 이민 온 뒤로 가장으로서 꾸며가는 생활에 거의 생일을 망각하고 있었다. 아니 부모님의 곁을 떠난 뒤 반평생 생일을 잊고 살은 것 같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70이라는 생일을 맞게 되니 감회가 깊었다.
비록 30명의 친지와 가족의 조촐한 모임이 되었지만 생일도 모르고 억척같이 살아온 나의 현실은 한때 외롭고 쓸쓸했지만 가족이 있고, 형제들이 있어 많은 위로와 격려로 이렇게 건강을 지켜가며 지금도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건강하기에 직장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이 자부심은 어느 곳에 비할 곳이 없다.
한국에 친구들은 모두 벌써 은퇴하고, 폐인이 된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지금도 다른 곳으로 옮길 직장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만 하다.
의사와 변호사가 된 아이들은 나더러 은퇴하고 쉬라고 자주 권유한다.
이제 나더러 할아버지라고 부르니 쓰러져가는 고목으로 취급하는듯 하여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이 고목이 되었는데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노인으로서 잘 갖추어야 할 것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진/ 훼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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