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라는 말에는 정형화된 어떤 이미지가 따라 다닌다. 세상은 바뀌었어도 무리를 이끌고 가는 리더의 이미지는 오래 지속돼 온 스테레오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강인한 성격과 외모, 달변, 그리고 카리스마 같은 것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최근호 시사주간 타임은 이런 통념에 의문을 던지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외향적 성격의 장점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이 리더로서 오히려 더 뛰어난 자질일 수 있으며 실제로 정치와 비즈니스에서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이 점차 리더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의 리더는 생각이 깊고 자신의 결정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해 신중하며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인다. 반면 외형적인 성격의 리더들은 보상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결과에 대한 고려보다 개인의 욕망과 야망을 앞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감당해야 할 결과를 생각지 않고 어린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클린턴이나 밀어붙이기식으로 전쟁을 일으킨 부시가 대표적이다. 리더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 경우에도 외향적일수록 더 자주 부상을 입고 혼외정사를 많이 벌인다는 통계도 있다.
과대평가된 외향적 리더에 관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말이 많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지나치게 열심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은 설익은 상태로 발표되기 일쑤이고 말실수도 잦다.
그가 자랑해 온 자원외교 성과도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나마 일부 자원외교 성과는 전임정권 10년 동안 뿌려놓은 씨앗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업적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미성숙한 리더십에 국가재정은 거덜 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 진다.
측근 비리와 실정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데도 “우리는 완벽히 도덕적인 정권”이라며 오불관언이다. 심리학자 저스틴 크루거는 “무능한 사람들은 무능할 뿐 아니라 너무 무능해 자신의 무능을 똑바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무능의 이중고’를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확신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을 휩쓴 ‘안철수 현상’은 이에 대한 반동이라 보면 된다. 내용은 없이 소리만 요란한 깡통 리더십에 실망하고 식상해진 국민들이 조용하고 감성이 느껴지는 인물을 새로운 리더로 갈구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원로 소설가 황석영씨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너무 무식해. 인문적 가슴이 없잖아”라고 독설을 던졌다. ‘인문적 가슴’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정치가라면 국민일 것이고 기업인이라면 소비자와 종업원들이다. 이런 가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이라는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황씨의 지적이 일부 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불쾌하겠지만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인문적 가슴’이 아니라 ‘경제적 가슴’으로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이다. 모든 일을 효율성과 숫자로만 바라보고 설명하려 든다. 이런 가치관으로 살아온 탓인지 말과 행동에서 별로 소양이 느껴지지 않는다.(그가 어떤 스님 다비식에서 ‘긍락왕생 하소서’라고 썼다가 비서관의 귀띔에 극락왕생으로 고쳐 쓴 해프닝 정도는 맞춤법 실수로 치부하더라도 말이다)
황석영씨는 그러면서 인문적 가슴이 없는 이유로 “장사꾼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최인호 소설인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정한 장사꾼, 정말 큰 장사꾼이 되려면 인문적 가슴이 있어야 한다. 황씨는 “작은 장사꾼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어야 했다.
타임지는 CEO의 리더십과 종업원들 간에도 궁합이 있다고 지적한다. 외향적 리더십은 순종적인 종업원들에게 효과적인 반면 창의적이며 자기 주관이 강한 직원들로 이뤄진 조직은 내성적 리더 아래서 더욱 성장한다는 것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는 말달리고 칼 휘두르는 리더십이 일정 부분 필요했지만 이제 이런 리더는 박물관에나 더 어울린다. 국민들이 똑똑해진 요즘 세상에는 인문적 가슴을 지닌 조용한 리더십이 나와야 나라가 안정감 있게 굴러갈 수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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