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찾으려는 코로나도의 탐험대 모습을 그린 그림.
1541년 봄에 탐험대의 주력부대는 지금의 텍사스<본래의 이름은 떼하스(Tejas), 지붕이라는 뜻의 스패니시. 멕시코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의 J는 X로도 표기가 가능하다. 같은 맥락으로Mexico를 Mejico라고도 사용한다>의 뻴로두로(Peloduro; ‘강한 털’이라는 뜻의 스패니시) 캐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코로나도는 30명의 기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탐험요원들을 남겨두고, 전설상의 부유한 땅 키비라(지금의 캔사스 지역)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탐험을 계속했다. 마침내 1541년 6월29일 탐험대는 아칸소 강을 건너 캔사스에 도착하여 황금도시 키비라를 찾았으나 그곳에는 반 유목생활을 하는 가난한 인디언 부락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캔사스주의 어원은 스패니시 깐사스(Cansas; 고난들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일확천금을 얻고자 시작한 북미대륙 탐험은 험준한 로키산맥을 오르내리는 고행의 연속이었지만 결과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야말로 힘 빠지고 실망적인 여정뿐이었다. 지금도 캔사스주에서는 ‘고난을 뚫고 목적지까지’라는 표어를 내걸고 최초의 탐험가인 코로나도를 기린다.
1542년 코로나도는 멕시코로 돌아와 성과 없는 그의 탐험결과를 멘도사에게 보고한 뒤 누에바갈리시아 지역을 다시 통치했다.
그는 탐험 후에 공식적으로 행해지던 감사인 레시덴시아(residencia)에서 기소되었으나, 1546년 2월 스페인 식민지의 통치기관인 아우디엔시아(audiencia)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총독직 수행에 대해 레시덴시아에서 다시 기소되어 벌금형에 처해졌고, 그로 인해 상당량의 재산을 잃게 된다.
이후 코로나도는 멕시코시 위원회의 위원직으로 남아 있다가 1554년 9월22일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다.
John Kim의 Spanish Class (323)346-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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