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이미 더럽혀진 물이나/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식은 채/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결국 다시 맑아지며/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잘 알려진 도종환 시인의 <멀리 가는 물> 이라는 시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참 맑아진다. 한 가정의 가장이나 직장의 상사 지역사회나 나라의 지도자에 이르기 까지, 더불어 함께 가야 할 위치에 있는 리더가 이런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막연히 그리고 간절히 그리워하게 하는 시이다.
정치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도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의 시를 애독하는 나는 뭔가 소중한 내 정신의 뼈가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이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가 쓴 8종의 시 게재에 대해 신중해줄 것을 권고해 논란이 일었을 때 나는 어쩌면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의 전초전이 아닌가 생각하며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도 시인 스스로가 자신을 문학 분야의 이른바 1%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했고 지금 갖고 있는 명성과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며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거든 그 명성과 혜택을 누리며 남은 생애 편히 살면 되련만 왜 그는 또 다른 고난의 길을 자초하는가.
위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인생이라는 먼 길을 끝까지 맑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그러나 이 세상에는 없는 한 사람을 일컫는 시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국회의원이 된 후 이 시의 흐린 손/더럽혀진 물/썩을 대로 썩은 물/은 다름아닌 한국 국회의원들을 일컫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자신은 이제 막 산골짝을 나선 맑은 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물론 동료들, 국민 95%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 뭐가 아쉬워서 지지율 5%도 채 안 되는 국회의원이 됐느냐는 질타를 받아가면서도 그는 결국 국회의원의 길을 택했다. 그는 말했다. “지금의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다. 무너진 언로와 문화의 기틀을 바로 잡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임을 절감하고 있는 만큼 작은 힘이나마 시인의 마음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 한다.”고.
그가 제20회 공초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말했듯이 부디 험난한 판에 들어가도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 사유의 품격과 언어의 품격, 글의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시길 바란다. 시인으로서 언어에 봉사하듯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되 임기가 끝나면 약속대로 무사히 시인으로 돌아와 인생의 후반기를 초연하게 사시길 바란다.
지금껏 그의 문학이 가난과 소외, 눈물과 고통,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빌어 마지 않는다.
부디 국민과 함께 눈물 흘리고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시인의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겠다는 그 맹세를 잊지 마시라. 오로지 시인다운 참 시인의 마음이라야 만이 이 세상 그 여러 물과 만나 함께 흐르되 흐리고, 더럽혀지고, 썩을 대로 썩은 물까지도 맑게 만들어 멀리 가는 물이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