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한제국 공사관 건물(100년 전 사진 왼쪽)과 현재의 공사관 건물
102년만에 다시찾은 대한민국 자주외교의 상징
1891년 고종 내탕금 2만5,000달러로 매입, 18년간 대미 외교활동
1910년 일본 단돈 5달러에 강제매각...100년 넘도록 원형 그대로 유지
수차례 매입노력 허사...문화재청, 국민신탁 주체로 350만달러에 매입
재미동포사회, 특히 워싱턴지역 동포사회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주미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매입이 실현됐다. 실로 102년만에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21일 한국 문화재청은 1910년 일제가 강제 매각한 주미대한제국 공사관을 되찾기 위한 최종협상을 마무리 짓고 매입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변국들의 정치적 간섭을 물리치고 자주 외교활동을 펼쳤던 공간으로 한미 외교사적 의미가 큰 이 건물이기 때문에 연내로 정밀조사를 끝낸 뒤, 관계 전문가의 검토와 재미동포사회의 의견 수렴을 거쳐 전통문화 전시, 홍보 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도와 센가꾸 열도를 놓고 한,중,일 간 영토분쟁이 재연되고 있는 요즘 약소국의 서러움이 담긴 역사적인 장소, 자주외교의 상징물인 이 건물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채 문화유산으로 우리들의 손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참으로 잘 된 일이라 생각된다.
1891년 11월 고종의 통치자금인 내탕금 2만5천달로 매입돼 18년간 5명의 전권공사와 8명의 서리공사를 포함한 총 13명의 공사가 대미 외교활동을 펼쳤던 역자적인 공간, 그러다가 망국과 더불어 단돈 5달러에 일제에 강탈당했던 이 공관은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에서 철저하게 잊혀진 건물이기도 했다. 그 오랜 세월 재개발되거나 헐리지도 않은 채 살아 있었다. 116년이란 긴 수명을 견디며 원형을 유지한 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동안 방선주 등 국내외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건물의 실체가 밝혀졌고 지난 2000년을 전후해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를 중심으로 이 건물을 매입하려는 노력들이 기울여졌다. 특히 2003년 이 건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식한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 사업회 워싱턴지부(회장 박윤수)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섣불리 소유주의 욕심만 건드린 케이스가 됐다. 당시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에 의해 평가된 해당 건물 가격은 60만달러 정도로, 아무리 비싸게 불러도 100만달러 미만 수준이었으나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눈치 챈 소유주는 당장 200만달러를 홋가했다.
엄두를 못내던 2008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가 매입을 시도했을 때 소유주는 가격을 배로 불려 400만달러를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와같이 재미동포사회가 공사관 매입을 위한 모금과 매입 서명운동 등을 펼치며 한국정부와 함께 15년 동안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채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사이 한국 문화재청의 물밑작업이 은근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민관협력에 의한 협상전략을 세우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매입 주체로 정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을 통해 연초부터 매입 협상을 진행시켰다고 한다. 다국적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CBRE 코리아가 에이전시로 선정됐다. 그동안 번번히 실패한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이 아닌 국민신탁이 매입주체로 나서 건물 소유주인 티모시 젠킨스를 설득시킨 것.
국민신탁은 국민이나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기금이며 운동이다. 구미 여러나라에서는 이런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태동단계에 있다고 한다. 국민신탁은 왜 이 공사관 건물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설득했으며 소유주 또한 미국의 내셔널 트러스트(국민신탁)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국민신탁의 취지에 어렵지 않게 찬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당초 부른 가격 620만 달러도 350만 달러로 하향 조정할수 있었다. 부동산 수수료 3억원은 현대카드가 기부키로 했고 그외 등록비 등을 합쳐 총 373만달러를 지불하기로 되어 있다. 때마침 한미 수교 130주년이 되는 올해에 계약체결을 할 수 있게 되어 여러모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주미공사관 건물의 주소는 15 로건 서클, NW Washington D.C.이다. 13가와 로드 아일랜드, 버몬트 애비뉴가 함께 만나는 서클로, 백악관 기점 동북쪽 방면에 위치해 있으며 차로 10분 거리다. 서클 한복판 공원에는 남북전쟁시 북군 장군이었던 로건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지역은 역사 보존 지구로 주위에 30여채의 타운하우스 건물들이 늘어선 가운데 빅토리아풍의 아담하고 고풍스럽게 생긴 적갈색 건물이 바로 주미공사관이다. 깨끗하고 세련된 건축미에 행인들은 누구나 한번쯤 시선을 보낼만한 대상이기도 하다. 필자도 지난 1986년 이승만의 구미위원부 건물과 변수의 묘지를 방문하는 길에 일부러 찾아간 기억이 새롭다. 그때 찍은 사진은 2008년 한미 헤리티지재단이 출판한 ‘한인이민 사적지’ 미동부편에 국영문 해설과 함께 실려있다.
이 건물은 고종의 결심에 따라 1891년 11월28일 서리공사 이채연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워싱턴시 토지문서에 매도인은 브라운, 구매인은 현 조선국왕 폐하(His majesty the Present King of Chosun Ye)로 되어있다. 천정이 높은 건물에는 널직한 방들이 9개나 있고 지하실에 또다른 방들이 있었으며 공사관 직원 및 가족들은 2층과 3층에 각각 기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대지 70평, 연면적 165평. 지은지 14년 된 건물로 이채연 공사는 건물 옥상에 태극기를 높이 걸었다.
자체건물이 매입되기 이전에는 1888년 부임한 초대 공사 박정양에 이어 이하영, 이완용의 서리공사 시절 3년여 전세건물에 세들어 있었다. 이완용과 이하영은 그후 을사 6적으로 분류되는 매국노가 되었지만 그당시에는 개화, 친미파로 분류된 외교 엘리트 들이었다. 공사관을 매입한 이채연 이후 서광범, 이범진, 조민희 전권 공사에 이어 신태무, 김윤정 대리공사를 끝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제에 박탈당했다. 1910. 8.29 강제병합 두달전 건물은 단돈 5달러에 매각됐다. 형식적인 서류에 양도인은 고종(한국태황제 폐하), 양수인은 주미 일본공사 우찌다, 궁내부 특진관 민병석이 연좌 서명했다. 우찌다 공사는 그해 8월말 미국 민간인 풀턴에게 이 건물을 10달러에 매각했으며 1977년 현 소유주인 티모시 젠킨스에게 넘어간 것으로 되어있다.
한국 문화재청은 이번 건물 매입을 계기로 국외 소재 역사적 기념물에 대한 보존, 활용 정책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 기회에 뉴욕의 오래된 이민 사적지 뉴욕한인교회도 증축되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1921년 매입된 뉴욕한인교회는 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드나들며 운동을 벌였던 유적지이다. 해방전 조병옥, 장덕수, 김활란 등이 유숙했고 안익태의 애국가가 작곡한 장소로도 정평이 나있지만 교회가 너무 낡아 현재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증축하거나 매각해야 되는 입장에 놓여있다. 이 건물이 독립운동 사적지로서 증축되어 교회역할과 함께 뉴욕한인들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겨지는 전통의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종무<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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