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유독 그리움이 짙어진다. 이맘때쯤 고향의 하늘이 맑고 높은 날을 택해 어머니는 이불과 요의 홑청을 냇물에 내다 빠셨다. 빤 홑청은 잿물에 푹 삶아지고 다시 냇물에서 깨끗이 헹궈졌다. 이어 풀이 먹여지고 높은 빨랫줄에서 한나절을 펄럭거리며 말려졌다. 고슬고슬한 홑청은 방망이로 실컷 두들겨 맞고서야 살그머니 주름을 내려놓고 다소곳해졌다.
해가 서산에 걸릴 때쯤이면 해맑은 얼굴로 바삭거리는 홑청은 이불과 요에 끼워졌다. 그 까슬까슬하고 차가운 듯 산뜻한 이불 속에서 나는 온갖 시름을 잊고 길고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아니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이불 때문에 하룻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말 웅변선수로 선정된 후 웅변원고 준비 차 담임선생님 집에 간 날이었다.
너무 늦어지자 선생님이 자고 가라며 이부자리를 준비해 주셨다. 갓 결혼하신 선생님이 내 주신 이부자리는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는 가볍고 폭신한 이부자리였다. 그렇게 고급스러운 이불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게다가 목욕을 한 지가 꽤 오래되어서 그 새하얀 요 위에 때가 묻을 것만 같아 잠이 도통 오질 않았다. 그 아름다운 이부자리가 결국은 가시방석 못지않게 불편한 밤을 낳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 이불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선생님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면서도 찾아뵙기는커녕 안부편지조차 못 드리고 뜀박질해온 세월, 이제 아쉬움과 후회가 엉클어져 가슴을 죈다.
<양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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