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철회입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시려고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친구의 마지막 인사를 들은 지 어느새 1년이다. 자기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들려준 육성 녹음 방송. 맑고, 따뜻한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말은 죽은 자가 하고, 산 자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던 그의 장례식. 위암 선고를 받은 후 잠시 호전 되었다가 다시 악화되어 발병 4년 만에 6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평소 시조를 쓰던 그는 위암 진단을 받은 날 이런 시조를 썼다. “암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공평한고 / 하도야 많은 행복 잔잔한 삶 속에서/ 가만히 찾아온 손님, 슬그머니 일깨네.”<위암을 발견한 날>
암에 대한 생각도 시조에 담았다. “나에게 겸손을 가르치러 오셨나 / 구태여 수고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을/ 기왕에 길을 했으니 쉬었다 가시게나.”<암이라는 친구>
화학치료를 받던 중에는 이런 시조를 썼다. “책 읽다 쳐다보니 이제야 저녁 허리/ 덩그라니 남아있는 한 밤이 행복해라 / 내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아직은 오늘”<3회째 케모 시작 전날 밤>
마지막 가는 날까지 그는 한번도 병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고 병실에서 얼굴 찡그리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그리고는 ‘소풍가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며 훌훌 떠난 그를 살아서 왜 더 자주 만나지 않았는 지, 왜 더 존경하고 배우지 못했는 지 아쉽기만 하다.
법정 통역사로 칼럼니스트로 이름이 알려졌던 친구는 녹음으로 문상객들에게 일일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기쁨과 즐거움은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처럼, 슬픔도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덕에 저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고별사는 이어졌다.
“이제 정말 때가 된 같습니다. 작별 인사가 길어 졌지요? … 이제 다시 먼 길을 떠나면서, 앞길이 어떨런지 전혀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어렸을 적 소풍 가지 전날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처럼 두근거리네요. 또 설혹 눈을 감은 후에 아무것도 없다한들… 왜요? 한 세상 잘 살았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 자, 여기 모이신 여러분 모두를 위해 또 시조 한 수 읊겠습니다.”
그가 이 세상 떠나면서 마지막 남긴 시조였다.
“정다운 벗님네들 덕분에 행복했네 / 만나면 헤어질 때 당연히 있으련만 / 못 잊어 돌아보는 건 삶이 하도 아름다워.”
친구는 웃었다.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우리 연대 선배 윤동주 시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그런 삶을 살지는 못 했지만 그런대로 후회는 없는 삶이었습니다. 자, 안녕히들 계세요.”
그렇게 친구가 떠난 지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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