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8일자 한국일보 ‘뉴스칼럼’을 통해 서정주 기념관에 관한 얘기를 읽었다. 이 칼럼은 전북 고창에 세워진 미당 문학관이 그의 명성에 비해 너무 초라했고, 진열된 작품도 그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려는 것인지 그의 친일 행적을 규탄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판적인 것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마 그가 이렇게 자기 고향에서 글자그대로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전두환 지지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놀랐다.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작년에 서정주 기념관을 다녀오면서 필자가 받았던 느낌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은 2000년 12월에 사망했다.
그의 기념관은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창군 선운리에 있다. 문인협회 등 건립추진위원회에서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매입하여 1997년 기념관을 세우기 시작하여 2003년 완성했다. 3,000여 평의 터에 건평이 300평 정도 된다고 했다. 기념관 가까운 곳에 복원된 그의 생가가 있었다. 미당 생전에 건립이 시작되었으므로 시인의 의견이 기념관에 충분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기념관은 생가와 함께 장소는 물론 규모나 짜임새로 보아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기념관에는 ‘한국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국화 옆에서’를 비롯한 수많은 시가 걸려있었다. 평소에 그가 애용하던 물품, 그리고 그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일반인은 물론 꽤 많은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있었다. 기념관에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힌 미당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 흐뭇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작품과 함께 “ 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라고 읊은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등 친일 작품 몇 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라고 노래한 ‘전두환 대통령 탄신58회 축시’도 보였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잘났건 못났건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자식이다. 장례식장에 잘난 자식만 세워 놓을 수 없듯이, 시인의 공과 과를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평가하도록 숨기고 싶은 작품까지 함께 전시한 기념관측의 공정한 처사가 돋보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어떤 이유로도 그러한 독자의 권리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시인이었다고 기억되는 걸 오히려 그가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칼럼에서는 “미당이 이렇게 자기 고향에서 글자그대로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전두환 지지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고 단정했다. 기념관이 냉대를 받고 있는지의 여부는 각자의 느낌에 따라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이유를 전두환과 관련지어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이는 자칫 5.18을 폄하함과 동시에 광주 민주항쟁을 지역의 문제로 국한 시키는,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찬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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