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더가 영입되면 크게 두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고수하며 돈줄과 파워를 유지하려는 노력, 아니면, 기존 체제에 도전하여 낡은 제도를 허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야심찬 움직임이다. 후자의 경우, 일의 잘잘못에 따라 리더는 개혁자 아니면 반역자로 불린다.
“SAT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다”라고 최근 공개적으로 발언한 칼리지보드의 신임대표 데이빗 콜먼은 후대에 어떤 리더로 기억될까. 그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단어가 시험에서 사용되고, 기계적으로 써내려 점수를 받는 에세이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문제의 핵심을 어렴풋이 건드렸다.
그렇지만 연 수입 2억 달러를 올리는 칼리지보드에서 연봉 75만 달러를 받는 총수로서 차마 SAT 무용론은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저 “SAT개편을 위해서는 칼리지보드 이사회와 고등교육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공통교과목(Common Core Standard)의 교과서 중심으로 문제가 출제되어야 한다”라고 개선의 여지를 남기는 것에 그쳤다.
1926년에 시작된 SAT는 학교에서 습득된 지식이 아니라 학생의 내재된 능력(aptitude)을 측정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당시에 점령하듯 대학으로 몰려드는 우수한 유대인 학생들을 몰아내기 위한 도구였다.
후에 칼리지보드는 그 사실을 단호히 부인하고 “학교 안팎에서 개발된 이성적 사고방식을 측정하는 시험”이라고 고집해왔다. 지난 80여년 동안 SAT 무용론은 40편이 넘는 논문을 통해 꾸준히 주장되어 왔고, 2001년 당시 UC총장이었던 리처드 애트킨슨은 “여학생과 소수민족 학생에게 불리한 표준시험에 집착하는 것은 원자폭탄 제조경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SAT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 뿐이다. 3시간45분의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다. 좀 더 심한 경우 “SAT는 사기극”이라고 부르며 “아무 것도 측정하지 못하는 시험”이라고 내려친 프린스터리뷰 대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학생의 인격까지 SAT 점수로 판단하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바라는 점수와 현실점수 차이에서 오는 허탈감과 실망을 피할지 못하고, 마치 점수의 에덴동산이 저편 너머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준히 갈망하지만 종국에는 히스테리, 체념, 포기만 남는다.
빌 브래들리는 SAT 영어에서 485점을 받았다. 그는 고교시절 농구팀에서 열심히 뛰고 코치에게 잘 보인 덕택에 프린스턴에 농구특기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대학 첫해부터 대부분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기 시작했다. 학업에서 살아남으려고 운동에서 배운 극기 훈련 방법을 동원해 도서관 폐관 시간까지 매일 혼자 남아 공부에 매달렸다. 그 결과 서서히 운동과 공부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졸업반 때는 동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프린스턴 농구팀을 NCAA 준결승까지 오르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경기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강의 과제물을 정리하는 열성을 보여 역사학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뽑혀 옥스포드로 건너가 견문을 넓혔다. 후에 뉴욕 닉스 농구팀에 입단했고, 연방의회에 들어가 상원의원으로 활약했다.
농구가 아니었더라면 브래들리가 프린스턴에 발을 디디지도 못했겠지만, 만일 그가 485점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더라면 학업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SAT는 믿을만한 표준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만일, 칼리지보드의 신임대표가 이런 열정 엘리트의 사례를 소개하고 SAT무용론을 펼친다면 그는 진정한 개혁자로 불리게 될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