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채집광인 사이코 은행직원이 있었다. 허구한 날 동료들이 그의 책상너머로 커다란 종이나비와 잠자리채를 흔들며 놀려댔다. 외골수, 외톨이에 가난하기까지 한 그 총각직원은 운 좋게 복권에 당첨돼 거금을 손에 쥐자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 있는 외딴 집을 사들였다. 자기가 특별히 계획하는 채집용도에 그 집 지하실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프레디인 청년은 그 집을 나비 아닌 여자채집에 이용한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몇 번 보고 짝사랑하게 된 미술대학 여학생 미란다이다. 프레디는 남자친구와 다투고 혼자 공원을 걸어가는 미란다를 뒤에서 덮쳐 나비채집에 쓰는 클로로포름(마취제)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아 기절시킨 후 자기 밴에 싣고 시골집으로 데려와 지하실에 감금한다.
프레디는 그녀를 강간하거나 몸값을 우려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있고 싶을 뿐이라며 극진히 대한다. 미란다는 자기도 머잖아 나비처럼 죽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한다. 번번이 실패한 그녀는 프레디가 인사차 찾아온 동네 사람을 현관에서 맞는 동안 수돗물을 온 집에 넘치게 틀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했지만 역시 실패한다.
어느 날 저녁 미란다는 탈출할 기회를 잡고 삽으로 프레디의 얼굴을 내리친다. 피투성이가 된 프레디는 그녀의 손발을 묶어 지하실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병원으로 달려가 상냥한 간호사의 치료를 받는다. 그가 사흘 후 돌아왔을 때 미란다는 폐렴으로 숨진 상태였다. 시체를 뒤뜰에 암장한 프레디는 그녀보다 쉬워 보였던 간호사를 ‘채집’하러 나선다.
이 얘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영국영화 ‘수집가’(The Collector, 1965년)의 줄거리다. 옛날 영화 얘기를 새삼 늘어놓은 것은 요즘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얘기가 세상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의 히스패닉 밀집동네에서 납치당한 세 여성이 그 동네의 한 집 지하실에서 10년을 갇혀 살다가 이번 주 구출됐다는 얘기다.
납치범 에이리엘 카스트로(52)는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는 사이코가 아니다. 스쿨버스 운전기사였고 동네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멋쟁이였다. 모든 주민들, 특히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그런 그가 14세, 16세, 20세의 동네여자 3명을 2002년부터 해마다 한명씩 납치해 지하실 방에 감금하고 손발을 개처럼 쇠사슬과 밧줄로 묶어 놨다.
카스트로가 납치한 최연소 소녀는 밴드의 동료 연주자 딸이다. 그는 소녀가족과 함께 수배전단을 뿌렸고 추도모임에서 소녀의 어머니를 껴안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는 폭군이요 섹스 화신이었다.
카스트로는 현관문을 봉쇄하고 뒷문으로만 출입했다. 문마다 자물쇠를 2중 3중으로 달았고 창문도 모두 가려 놨다. 그 철옹성에서 베리가 지난 6일 탈출했다. 카스트로가 외출하자 가까스로 포승을 푼 베리는 밖에서 잠긴 현관문을 두드리며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들은 이웃 주민의 신고로 세 여성과 베리의 딸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됐다.
카스트로나 영화의 프레디만 ‘콜렉터’가 아니다. 시애틀 일원에선 매일 500여명의 미성년 섹스노예들이 성매매를 강요당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그 숫자가 180여만명에 이른다. 무수한 북한여인들이 납치돼 신붓감이 부족한 중국으로 밀매된다. 미국에 밀입국한 한국여인들이 인신매매 조직에 ‘채집’돼 대도시 매음굴에 팔려간 사례가 꼬리를 이었었다.
워싱턴 주는 2002년 이후 섹스노예 근절 관련법을 무려 33개나 제정했다. 지난달에도 관련 위원회가 2개나 신설됐다. 그러나 법과 위원회로 해결될 일이라면 벌써 그렇게 됐다. 세계최고의 인권국가인 미국에서 인신매매 조직이 준동하는 것은 불과 150년 전까지도 흑인노예를 팔고 산 ‘인신 콜렉터’ 조상들의 업보일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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