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가 열린 오클랜드 콜리시움. 전광판에는 오클랜드에서 2,900㎞ 떨어진 캔자스시티에 사는 14세 소년 닉 르그랜드가 나타났다. 닉이 집에 설치된 작은 모형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자 경기장 마운드의 로봇이 센서로 원격신호를 전달받아 시구를 했다. 희귀 혈액장애를 앓아 경기장을 찾을 수 없는 닉을 위해 오클랜드 구단이 마련한 생일 선물이었다. 선수와 관중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구의 의미는 특별하다. 구단들은 마운드에 아무나 세우지 않는다. 초특급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다. 시구행사를 아무 때나 갖지도 않는다. 개막전이나 야구계에서 기념하는 날 또는 구단 역사에서 상징성이 있는 날에만 한다. 뉴욕 양키스는 시구행사를 한 시즌에 10~20회로 제한한다. 그래서 시구마다 특별한 의미와 감동이 담긴다. 파울 볼을 잡으려다 사망한 소방관 아들의 시구, 두 팔이 없이 태어난 장애인의 발 시구, 이라크 참전용사의 시구, 사상 최초의 우주정거장에서의 시구….
우리 프로야구 시구는 연예인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고만고만한 여자 아이돌과 탤런트, 영화배우 등 연예인들의 독무대나 다를 바 없다. 눈요기 시구로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타는 사례가 잇따라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섹시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한 클라라는“시구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혼신의 역투로‘개념 연예인’이 된 홍수아와 전 리듬체조선수 신수지의‘곡예 시구’도 화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한 대통령은 모두 4명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 시구는 거의 대통령 몫이다. 야구광이던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여덟 차례 시구를 했다. 박 대통령의 깜짝 시구에 눈을 모로 뜰 일은 아니다. 다만 떨어지는 지지도를 만회하거나 복잡한 정국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아니었으면 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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