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잉글랜드의 자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을철 단풍을 꼽는다. 10월의 맑은 주말 (19일), 서울대 뉴잉글랜드 동문가족들이 가을 산행으로 택한 곳은 보스턴 남쪽 Milton, 작은 능선들이 모여 만들어낸 Blue Hills의 완만한 산속 길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모이는 일정이 느긋했고, 높지 않은 언덕산은 공연히 들뜨는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어 주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인들이 서양나라에 첫 나들이 했던 때도 가을이었다. 1883년 9월 19일 보스턴에 여장을 푼 구한말 고종의 대미친선사절단은, 다음날인 20일 이 곳 Blue Hills 지역의 농장들을 견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혈기왕성한 20대의 선비, 무관들로 암울했던 당시의 조국에 새로운 개화의 길을 열고자 하였다.
한 예로 일행이었던 최경석은 귀국 후 이곳에서 본 농사기술의 도입에 젊음을 바쳤었다. 130년 전 선구자의 모습으로 이곳을 찾았던 한인 젊은이들의 꿈을 동문들도 함께 느끼며 걸었다. (보빙사절단의 행적에 관하여는 ‘뉴잉글랜드 한인사’ (2004) 참조)
장수인 동창회장의 주선으로 모인 서울대 동문가족 30여명이 노동완 동문의 안내로 그리 높지 않은 정상에 올랐다. 돌로 만들어진 고색창연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멀리 가을 산자락 너머로 보스턴 전경이 아득하고, 가까이 Houghton 호수가 단풍 속에 포근히 잠겨있었다. 동창회에서 준비한 김밥은 산길을 오른 뒤라 더욱 맛이 있었고,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며 잘 익은 가을의 과일 맛을 음미하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기념사진에 밝은 웃음들을 모아 담은 후, 경험이 많은 산악인 동문들은 가파른 돌길을, 완만하고 평탄한 길을 걷기를 원하는 동문들은 아스팔트 내리막길을 택했다. 스키장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시베리아 허스키’들의 눈빛에는 이곳에도 머지않아 찾아올 눈 덮인 Blue Hills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지만 보빙사절단의 옛 기상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빛나고, 동문들 간의 따스한 정이 추억으로 남아서 모두에게 즐거운 가을날의 아름다운 산행으로 기억되리라.
(글: 윤은상 사진제공-NE 서울대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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