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명선<수필가>
우람한 나무들이 찬바람에 몸서리 칠 때 마다 우수수........지나간 여름 강렬한 태양아래 다 소진해 버린 분신들을 하나씩 털어내며 쓸쓸히 견디어 내야 할 다가 올 겨울 채비를 한다, 한여름 빼곡하게 차있던 푸른 숲에도 조금씩 공간이 생기고 사방으로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 할 때면 하나씩 또 다른 풍경들이 서서히 눈앞에 펼쳐진다.
옆집의 송아지만한 누렁이가 가끔 우리 집 마당 경계선까지 다가와 뭉게구름 올려다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뒤태를 뽐내며 워킹 하는 모습도 이맘때 다시 보게 된다.잡초가 무성해진 텃밭에는 들깨가 여물어 톡톡 터지고 호두나무 가지 위를 오르락내리락 분주한 다람쥐 식구들은 얄궂은 바람에 실려 온 낙엽을 헤치며 자맥질을 해댄다. 바쁜 출근시간에 내 발걸음을 붙잡아 놓는 뒷집에는 아이들이 셋이다. 마당에 나와 뛰어 노는 아이들의 대화나 손 놓고 한참씩 훔쳐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자전거 줄넘기 훌라후프 스카이 콩콩 농구공,..날마다 온갖 놀이 기구들이 총 동원되어 세 아이들은 뛰고 쫓으며 아침마다 학교가기 전까지 마당에 나와 운동을 한다. 거기에 하얀 멍멍이 까지 왕왕 거리면 작은 운동회라도 열린 듯 아침마당은 하늘을 찌를 듯이 활기가 넘쳐 난다.
아빠도 출근 차림을 하고 나와서 엄마와 도란도란 커피 잔을 마주하며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계속 응대해 주며 눈길을 떼지 않는다. 아마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해 보고 세 아이의 학교생활과 장래에 대한 의견도 주고받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어느새 첫 번째 노란 스쿨버스가 집 앞에 멈춰 서면 그중 제일 큰 사내아이가 신나게 놀던 놀이를 멈추고 얼른 엄마아빠에게 달려가 뽀뽀를 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두 동생과 강아지가 버스에 바짝 다가가 힘차게 두 손을 흔들며 폴짝폴짝 발까지 구르며 배웅을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뛰고 밀리고 던지며 놀이를 하다보면 두 번 째 스쿨버스가 도착 한다 이번에는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오빠하고 똑같이 엄마아빠 볼에 입맞춤을 하고 덩실덩실 버스 안으로 사라진다. 막내와 강아지의 아낌없이 흔들어 주는 사랑스런 어리광이 아쉬운 듯 두 번째 버스는 조금 뜸을 들이다 늦게 나온 그 옆집 아이까지 태운 뒤에 천천히 골목길에서 사라진다.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면 아빠는 힘차게 패달을 밟고 일터로 향한다.
이때는 어김없이 막내딸이 아빠 품에 튕겨 들어갔다 아쉬운 듯 그 품에서 빠져 나온다.엄마는 놀이 기구들을 하나씩 챙겨 집안으로 들여 놓고 아직 취학 전인 막내딸을 품에 앉고 서서히 안으로 퇴장한다. 마당에 고요가 어색한 듯 언제나 조연을 마다 않는 멍멍이도 대사 없이 멀뚱멀뚱 사라진다. 항상 똑같은 시나리오 똑같은 출연자 똑같은 장소이지만 볼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고 잔잔하게 행복을 맛보게 된다.
오늘도 아쉽게 막이 내린 뒤뜰을 뒤로하고 황망하게 너부러진 낙엽을 가르며 출근길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 뜻 없이 뒷집 아이들의 먼 미래를 생각해본다. 그때도 여전히 활기찬 아침을 열고 멋지게 연기하며 세상이란 무대에서 열심히 뛰어 놀겠지. 인생은 연극무대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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