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 우리 부부가 한국 남해안을 여행했을 때 경남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을 들린 적이 있었다. 이 마을은 바다와 섬들이 어울려 퍼진 국립공원 한려수도를 앞으로, 경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금산을 뒤로, 유럽 농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한폭의 그림처럼 언덕에 걸쳐있었다 ‘독일마을’이라는 마을입구 바위 판에 새겨진 표지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이 마을의 중심 길인 독일로를 따라 언덕 위를 올라가다 베토벤 길과 괴테 길이 만나는 모퉁이 집에서 잔디에 물을 주고 있는 70좀 넘어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독일마을의 길 이름은 모두 독일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이 할머니의 안내로 집 구경을 했다. 집 구조와 시설은 미국의 집들처럼 현대식이었다. 30여 집으로 이루어진 독일마을 지붕들은 알프스 산속 집들처럼 빨간색이다. 이 할머니는 1964년 독일파송 간호사(당시는 간호원이라고 불렀음)였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독일인 남편과 독일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가 독일마을에서 정착하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남해군청이 은퇴한 독일파송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위해 마을 주택지를 조성, 이들이 원하는 집들을 짓고 여생을 보내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들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1960년대 초기 한국경제건설의 ‘종자돈’을 마련한 노고를 기리기 위해 이들을 초청한 것이라고 군 당국자는 설명했다. 한국 경제발전의 역군들이 노장이 되어 모여 사는 곳이 독일마을이다.
할머니는 우리가 묻지도 않는데 1964년 12월 10일 함브른 탄광 강당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독을 방문 중인 박정희 대통령이 이 강당을 찾아왔습니다. 한 300여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강당을 꽉 메웠습니다. 국민의례가 끝난 후 애국가가 시작됐습니다. 박 대통령 내외분이 애국가를 부르다가 손수건을 꺼냈고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와서 고생이 많습니다’는 말을 했을 때 장내에서 간호사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경제발전에 필요한 차관을 얻기 위해 당시 분단국가인 서독을 방문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탈 비행기도 구하지 못해 서독 정부가 보내 준 항공기를 이용했다. 서독은 광부와 간호사의 봉급을 볼모로 하여 1억4000만 마르크를 한국에 꿔주었다. 이것이 한국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됐다. 1964-75년 사이에 광부 66명, 간호사 44명, 기능공 4명이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내가 한국에 와서 산지가 2년 좀 넘었습니다. 보리 고개를 넘기지 못했던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어디나 도로가 포장이 됐습니다. 지금은 굶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가집이 사라졌습니다. 수돗물과 전기가 없던 남해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만일 이런 경제발전이 없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은 모두 허사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흘린 눈물의 열매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나라를 이끌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박대통령이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오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50년 전 아버지가 방문했던 독일을 대통령으로서 다시 찾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포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 자리에서 독일에 머물러 있는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만난다. 이날 모임에서 국민의례도 있을 것이고 애국가도 봉창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광부 간호사들이 흘렸던 그 눈물을 박근혜 대통령도 흘리면서 옛날을 회고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