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출장길에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며 시청 뒤 작은 북어국 집을 찾았다.
겨울철 이른 아침 흔들거리는 백열전구 밑에서 해장 겸 아침식사를 하곤 했던 이곳은 산뜻한 모습으로 탈바꿈 했지만, 뜨끈한 국물 맛은 예전 그대로였고, 여전히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40여년을 이어온 이 집의 메뉴는 달랑 북어국 하나. 손님이 들어오면 자리만 안내할 뿐 앉기가 무섭게 커다란 솥에서 국자로 담은 북어국이 곧바로 식탁에 놓인다. 반찬도 아주 간단해 김치와 부추와 전부다. 그것도 손님이 식탁에서 직접 먹을 만큼만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메뉴가 하나 뿐이니 변함없는 맛을 유지할 수 있고, 손님 회전율도 빠른 것은 당연한 이치. 주변의 크고 작은 식당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긴 세월을 이겨낸 비결이다.
최근 미국의 주요 식당 체인들이 메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한인들도 아침식사를 위해 즐겨 찾는 아이홉(IHOP)을 비롯해 BJ’s, 토니 로마스(Tony Loma’s) 등 주요 식당들이 잇달아 메뉴 수를 줄여 나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유명 체인식당들은 올해 메뉴 수를 7.1%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주 메뉴 뿐만이 아니라 애피타이저, 어린이 메뉴, 음료 및 주류 등 모든 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경쟁력을 높이고 손님들의 음식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서비스 차원에서 메뉴를 늘리는데 집중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주요 식당들이 메뉴를 줄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의 질을 높이고, 신속한 서비스 제공을 통한 새로운 경쟁력 확보 차원이다. 손님들이 주로 찾는 메뉴를 특화시키면서 더 맛있는 음식과 직원들의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 당연히 만족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7,000억달러에 달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새로운 경영철학을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불투명한 경제환경 속에서 변화에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일반 식당 뿐 아니라 버거킹과 맥도널드 등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이를 쫒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메뉴 줄이기가 업계의 전반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한인타운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띠는 비즈니스는 역시 식당이다.
한인식당에 들어가 보면 한 쪽 벽에 저 많은 음식들을 어떻게 다 만들어 내는 지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메뉴들과 가격이 적힌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메뉴가 많으면 손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어렵고 식당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참에 한인식당들도 한 번쯤 메뉴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제대로 손님의 입맛을 끌어들일 수 있는 대표 메뉴를 내세우고, 많이 찾지 않는 메뉴들은 과감히 없애는 것이다.
한식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그래야 까다로운 한인들의 입맛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타인종들의 최고 인기 메뉴가 된 갈비만 봐도 소고기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양념에 재워 놓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콩나물 반찬 하나도 참깨에 기름, 파 등을 넣어야 맛이 난다. 그만큼 원가 부담도 크고, 정성을 필요로 한다.
메뉴가 줄면 주방의 부담도 줄고, 맛에 더 정성을 기울 수 있다. 또 음식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재료구입에도 효율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음식을 내놓는 시간도 짧아짐은 물론이다.
맛은 지켜야 하지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맞춘 영업전략 추구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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