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로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본국의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떠오른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 상자를 연 순간 이 세상 온갖 재앙과 패악이 빠져나가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애시 당초 세상 온갖 나쁜 것들이 담겨있던 그 상자에 왜 희망이 함께 들어있었을까? 그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희망도 결국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세월호 정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피해자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이후 대한민국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온갖 비상식적인 패악으로 사회 전반이 열병을 앓게 된다. 청와대, 국회,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주류언론은 참사가 벌어진 순간부터 오보와 왜곡과 편파보도로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기에 앞장섰다.
기득권의 오만에 대항해 싸워줄 것이라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야당도 제2의 여당이라는 거센 비판을 들을 만큼 엉뚱한 행보만을 일삼았고, 이제는 아예 지리멸렬이다. 유가족들,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 하는 국민들의 단식투쟁을 비아냥거리는 일부 극우세력들의 ‘폭식투쟁’은 인간성 포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참담한 사건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린다. 심지어 지난 9월16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은 결국 국가의 최고통치권자가 공식적으로 “그만하라”는 교지를 내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가만히 있으므로 해서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서명을 받고, 단식을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그러니 유가족들을 비롯,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모아왔던 국민들에게 “그만하라”는 그 말만큼 모진 말은 없을 것이다.
희망이 나쁜 것은 그 끈을 놓았을 때, 바로 절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이 해결을 못하니 국민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남게 되었다. 유가족들이 요구한 특별법에 의사자 지정이니 대학특례법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바로 알려진 것도 양심 있는 국민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에 보면 “예로 바로잡고 은혜로 대한 뒤에라야 법으로 단속할 수 있다. 만약 능멸하여 짓밟고 함부로 부리며 이랬다저랬다 속임수로 몰아가면 단속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왜 요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은 이미 훼손된 지 오래다. 최근 법원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인정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한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를 저버리고 법과 체제를 이용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최고통치자와 기득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공직자로서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만 해야 할 당사자는 따로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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