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기획-무연고 묘지 91년째 방치된 애국지사 황기환 선생
뉴욕한인교회 장철우 목사 4년전 묘지 발견
한국정부 지난해 확인후 1년넘게 방치 비난
퀸즈 메스페스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공동묘지 촌. 퀸즈 블러바드 58가에서 우회전해 5분 정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여러 공동묘지 중 오른편으로 ‘마운트 올리벳 세미터리’가 나타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색 바랜 비석을 본적 있다면 짐작하겠지만, 이곳은 1800년대 말 개장한 뉴욕에서도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 중 한 곳.
수많은 한인들이 매일 지나치지만 이곳 무연고 묘역에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항일 독립지사 고 황기환 선생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4년 전 뉴욕한인교회 장철우 전 담임목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발견된 후 이곳은 뉴욕일원 유일의 독립 애국지사 묘역으로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모습을 보는 장 목사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선생의 묘지를 어렵사리 발견한 지 몇해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선생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장 목사는 “선생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시기 위해 수년간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미국과 유럽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황기환 선생의 묘지가 지난 2010년 퀸즈의 한 무연고 묘역에서 발견된 후 약 4년간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황기환 선생이 지난 1923년 현재 묘역에 안장된 점을 감안하면 무려 91년째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이국땅 묘역에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무관심한 한인사회와 한국정부의 행태를 그대로 말해준다는 지적이다. 특히 항일역사 관련 한국의 주무부서인 국가 보훈처는 지난해 5월 뉴욕을 방문, 실사를 통해 선생의 묘를 최종 확인하고도 1년 넘게 손을 놓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애국지사 황기환 선생 묘 어떻게 발견됐나=1995년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황기환 선생의 독립 활동기록은 한국 내에 다수 남아 있지만 사망정보는 존재하지 않아 그동안 묘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0년 당시 뉴욕한인교회의 장철우 담임목사가 우연치 않게 옛 교회명부에서 황기환 선생의 기록을 보게 된 후 묘를 찾아 나서면서 선생이 숨진 후 87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장 목사에 따르면 선생이 말년에 출석한 것으로 알려진 교회 명부에는 ‘황기환: 서울에서 출생, 1923년 4월18일 사망, 장지 Grave No. 2484 in Plot Westlawn, Mount Olivet Cemetery’로 기재돼 있다. 장 목사는 이 기록을 근거로 몇몇 교인들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공동묘지를 오고 간 끝에 그해말 결국 묘비를 찾아냈다.
공동묘지에 세워져 있는 묘비에는 한글로 ‘대한인 황긔환 지묘’ 라고 적혀있고, 아래쪽에 영문이름 ‘Earl K. Whang, Born in Korea, Died April 19, 1923’이라고 쓰여 있었다.
장 목사는 즉시 이같은 사실을 한국의 국가 보훈처에 신고했고, 수차례에 걸친 요구 끝에 지난해 국가 보훈처가 직접 실사를 나와 확인 작업까지 마쳤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는 상태다.
■손 놓고 있는 국가보훈처=이에 대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은 국가보훈처는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지난해 약속한대로 황기환 선생의 유해를 즉시 한국의 현충원으로 이장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국가보훈처 실사단은 지난해 뉴욕 실사 당시 “가능한 빨리 선생의 유해를 한국으로 이장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빠르면 2014년 광복절이나 순국선열의 날에 맞춰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유해 봉안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장 목사는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실사를 통해 황기환 선생의 유해를 확인한 만큼 곧바로 한국 봉안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식의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하고 “언제까지 선생의 유해를 무연고 묘지에 방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황기환 선생 유해이장 관련 담당자가 바뀐데다가 가족이 없는 황기환 선생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한 절차가 복잡해 이를 알아보기 위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조만간 뉴욕총영사관 등을 통해 협조 요청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조진우 기자>
■황기환 선생은 누구…
평안남도 순천 출신인 황기환 선생은 일제가 한반도를 합병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제1차 세계대전때 미군에 지원, 미국 대학생으로 구성된 소대 소대장으로 베를린에 입성한 주인공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리에 설치한 주파리 위원부에서 김규식 선생을 도와 파리강화 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했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친한파 영국 인사 62명을 규합시켜 대영제국 한국친우회를 결성하는 등 런던주차위원으로 활발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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