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집 밥이 지겹고 약속이 없으면 아파트 앞에 있는 샤핑센터 지하의 프랜차이즈 훠궈 식당을 찾는다. 작은 1인용 냄비에 매운 마라육수를 붓고 고기나 채소를 익혀 먹는 중국식 샤브샤브 식당은 언제나 만원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다 보면 식당은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되는 아이는 혼자 훠궈를 먹고 엄마는 의자에 앉아 빨리 먹으라고 재촉을 한다. 팔짱을 끼고 학원가는 시간을 못 맞춘다고 계속 핀잔을 주는 엄마는 결국 고기와 채소를 한꺼번에 냄비에 집어넣고 식당 밖으로 나가버린다. 잔뜩 풀이 죽은 아이는 훠궈를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축 늘어진 어깨에 가방을 메고 식당을 나간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조기교육 바람이 무섭다. 아파트에 뛰어노는 아이들은 보기 힘들고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만 보일 정도니 중국의 교육열도 한국 못지않다. 이런 교육열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를 위한 전초전이다.
지난 6월 중국의 대학 입시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치러졌다. 올해 응시대상 학생은 939만명. 학생 수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하지만 실제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10% 정도 줄어든다.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이 매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강조하던 중국의 대학이 철저하게 서열화 되면서 이름 없는 대학이나 지방대를 나와서는 취직이 어려운 만큼 아예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험조차 볼 수 없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후커우(호적)가 기재된 지역에서만 가오카오를 볼 수 있다는 규정에 도시로 이주한 다수의 농민공 자녀들은 가오카오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규정이 폐지되면서 올해 5만명의 농민공 자녀들이 가오카오에 응시하긴 했지만 준비를 하지 않은 농민공 자녀들은 때늦은 규정 폐지가 원망스럽다.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가오카오는 중국의 불평등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중국도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힘든 사회다.
가오카오를 대비한 입시 명문고를 중국인들은 가오카오뉴사오(高考牛校)라고 부른다. 가오카오를 대비해 사육장에서 소를 기르듯 학생들을 공부시킨다고 이런 별칭이 붙었다. 철저하게 입시 병기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유명 가오카오뉴사오는 가오카오 수석 배출은 물론 지역에서 베이징대·칭화대 등의 명문대에 높은 진학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오카오뉴사오가 주로 지방 지역에서 입시 명문고로 이름이 높다면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는 사교육 열풍이 이를 대신한다.
지난해 중국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1조1,000억위안(약 180조원)에 달한다. 특히 조기 유학 열풍으로 미국·영국 등에 유학을 보내기 위한 학원은 상상도 못할 높은 수강료를 받지만 대기 학생으로 넘친다.
지난해 첨밀밀·금지옥엽 등의 영화로 유명한 천커신 감독이 만든 영화 ‘중국합화인’은 베이징대 출신인 위민홍 등이 만든 학원 프랜차이즈 ‘신동방’의 성공이 모델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삐뚤어진 교육 열풍은 중국사회의 모순으로 이어진다. 교육 기회의 불균형은 계층 간 이동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좋은 사립학교를 나오고 비싼 학원을 다녀 명문대를 가거나 유학을 간 학생들이 사회로 돌아올 때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근접할 수 없는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오카오가 치러지던 지난 6월 7일 중국 남방 도시보는 산둥성과 광둥성의 어린 학생들이 생계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가기 위해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16세 미만은 고용할 수 없다는 법을 피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은 신분증을 만드는 에이전트에 돈을 지불하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의 힘이 최고가 돼버린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사교육 열풍에 허리가 휘고 있는 한국이나 교육이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