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무법자” 를 유튜브에서 봤다. 카우보이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주인공이 말발굽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를 날리며 황야를 달린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외로운 총잡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까까머리 중학생에게는 우상같아 보였다. 겨우 “I am a boy”정도의 영어를 배운 실력으로 영화 대사는 몰라도 주인공이 쏘는 총알에 악당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 차례로 쓰러지는 장면은 어린 가슴에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서양의 웨스턴 무비도 우리의 권선징악을 그대로 배웠나 보다.
까까머리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친구들의 주인공 이야기에 구경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딱딱한 독서실 의자에만 앉다가 푹신한 의자에서 보는 서부 영화는 가슴속에 작은 꿈을 심었나보다. 넓고 넓은 땅이며 멋진 말들 그리고 남자다운 건맨들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멋져 보인다. 단칸방에 한 식구가 모여 살던 시절에 밤늦도록 공부할 수 있는 곳은 독서실이 유일한 곳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옆자리에 닿을 듯한 두어자 책상머리에서 중고시절의 숱한 밤들을 보냈다.
미수의 고교 은사님의 축사가 떠오른다. 일제시대에 북한에서 교육을 받고 6.25 전쟁통에 남으로 내려와 30년이 지나 미국 이민길에 오른 분이시다. 벌써 88세 미수가 되었다며 삶을 삼등분해보니, 지옥에서 땅으로 그리고 지금은 천국에 사는 것 같다고 은퇴한 생활에 만족해 하신다. 집착과 인연을 뒤로 하고 잠시 갈 길을 멈추고 조용히 바라보는 여유를 말씀하신다. 나이가 들어 멀리 볼 수가 없어 가까이 둘러 보니 감사한 일들이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갚아야 할 고마운 빚도 너무나 많다고 회고한다.
연말연시 인사가 길가에 가득찼다. 길가에 번지는 짧은 미소에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를 복창해도 귓전으로 지나칠 뿐 가슴에 와 닿지를 않는다. 마치 겨울 아침 뒤뜰을 보는 것 같다. 한 여름 그처럼 위풍 당당하던 커다란 감나무가 잎은 다 떨구고 앙상한 모습으로 삐쭉이 서 있다. 칙칙한 낙옆들이 체면도 없이 마당에서 뒹군다. 주야청청 천년만년 갈 것 같더니만 얼마나 지났다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마도 술 냄새에 찌든 환락의 거리로 세상의 칼 바람이 지나간 탓인가 보다.
연말의 시계도 돌고 돌 뿐이다. 다행히 바른쪽으로만 돈다. 초시계는 초치고 분시계는 분칠하고 차면 넘치고 넘치면 날이 새고 날날이들은 해를 보내며 제 갈 길만 갈 뿐이다. 절대로 거꾸로 돌아가지 못한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하듯이 지나간 시간은 붙잡을 수가 없다. 돌고 도는 돈을 잡으려고 얼마나 달렸는지 정신이 혼미하다. 이전투구랄까 진흙탕 개싸움만도 못한 돈 싸움에 기진맥진 낙옆처럼 널부러져 구른다. 그래도 시계는 오른쪽으로 돌고 돈다.
여행은 살아남은 자들의 특권이다. 이역만리 이역 땅에서 먼 길을 달렸다. 총은 살기위한 방어 수단이다. 먼 길에는 늑대도 여우도 때로는 쥐새끼도 만난다. 싸움은 생존을 위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모두가 노을진 황야를 달리는 총잡이같은 주인공들이다. 목숨은 수학처럼 ‘+, -’로 계산되지 않는다. 삶은 외로운 긴 여정일 뿐이다.
시간은 여행이다. 과거는 모래 먼지처럼 하늘로 떠난다. 귓가를 스쳐간 말발굽 소리는 아련히 멀어진다. 지나온 삶의 궤적은 흙탕물에 잠겼다. 시간이 약이다. 여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맑은 물을 기다리며 고마운 얼굴들이 하나하나 살아난다. 따뜻한 눈물이 가슴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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