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둔 지난 14일 설 맞이 문화행사가 열리는 와이파후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Waipahu Hawaii’s Plantation Village)를 취재차 방문했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멋 모르고 따라간 취재였다. 하지만 도착해서 만난 수 많은 사람과 광경은 돌아오는 길의 생각을 무겁게 만든다. 플랜테이션 빌리지에 도착하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궂은 하늘 아래서 비를 흠뻑 맞은 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토니 리 한국관 관장이었다. 23년째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꼼꼼하게 행사 전반을 확인하면서 직접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각 한인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을 인터뷰하다가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그들은 한사코 멋쩍어하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뿌리를 후세에게 알리는 큰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 유세부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보인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주관한 토니 리 관장의 목소리를 녹음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녹음기를 들이대자 이 관장은 폭우 속에서도 행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했다. 오히려 행사일 날씨처럼 궂은 환경에서 꿋꿋이 행사를 이어온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어쩌면 각종 단체나 자원봉사자들을 꾸준히 참여할 수 있게 만든 힘이 그의 이런 마음가짐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동포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또 분주히 움직였다.
이 행사에 깊이 관여해온 이 중에 고가 부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국관을 기웃거리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찬찬하게 설명을 하던 고가현자 선생도 인터뷰 중에 비슷한 말을 했다. 동포들의 참여를 원한다는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 말 속의 그 ‘동포’가 후세를 뜻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이 불문하고 활발한 에너지가 넘치는 행사장이었지만, 확실히 30대 미만의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특히 한글학교에서 온 방문객을 제외하면 이 행사를 준비하는 단체나 봉사자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이 행사가 20년 넘게 개최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한인사회를 있게 한 이민선조들을 기리고, 그 역사와 문화를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먹고 살기 바쁘다. 이민 와 살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하지만 바쁘단 핑계로 너도나도 역사를 잊고 산다면 동포사회는 어떤 사안에 대해 ‘공감’할 기회가 없어진다. 그것은 곧 어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되어 헤쳐 나갈 힘이 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의미를 직접 느끼지 못한다면 후세는 영영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멋 모르고 쫓아갔던 인턴기자의 사례처럼 이민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어깨너머로 볼 수 있도록 청장년 세대가 어린 세대의 손을 붙잡고 돌아다녔으면 한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해 있는 그 어린 세대에게 자꾸 자꾸 그 의미를 찬찬히 설명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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