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토박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의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고유의 종족이름도 있었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그들은 하루아침에 혈연은 고사하고 그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어본 적도 없고, 만나본 적도 없는 ‘인디언’ 즉, ‘인도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이 곳이 인도인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 곳이 인도 땅이 아니라 ‘신대륙’임을 알 게 되었지만,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인디언’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아메리카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노릇인가? 처음엔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잘못된 줄을 알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당연히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 아닌가? 고쳐서 부를 마땅한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게 너무 어렵거나 복잡한 일도 아닌데 말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냥 일반인들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21세기 현재까지도 정부기관에서 조차 버젓이 공식 명칭에 ‘인디언 법’이니 뭐니 하고 사용하고 있고, 언론매체 에서나 교과서를 포함한 여러 책에서도 계속해서 ‘인디언’이라고 쓰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문화적 오만과 무성의도 이 정도면 노벨상감이 아니겠는가.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들이 흔히 즐겨 쓰는 “What’s in a name?”이란 말처럼 ‘아무렇게 부르면 어때?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그런가 하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 흑인들을 부르는 말은 원래 ‘Negro’(또는 약간 경멸적으로 Nigger)에서 시작해서 ‘Black’으로 갔다가 ‘Colored people’을 거쳐 지금은 ‘African American’이 가장 무난한 호칭으로 되어 있다. 지금 누가 공개석상에서 ‘Negro’나 ‘Nigger’라는 말을 썼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거나 심지어 법정에 불려갈 수도 있다.

그런데, 원래 ‘Negro’란 말은 단순히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에 주로 살고 있는 피부색깔이 검은 종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즉, 우리가 흔히 백인을 통칭해서 “미국사람’ 이라고 했듯이 ‘Negro’는 그냥 ‘흑인’을 통칭해서 부르는 평범한 명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에 흑인들 자체의 저급한 행동들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게 되고, 또 사람들이 차츰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뉘앙스를 섞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예 아무도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금기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통용되고 있는 ‘African American’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는 금기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 유독 인디언 아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호칭 문제에 대해서만은 왜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성의하게 내버려두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인도사람 입장에서는 또 어떤가? 자기들과는 털끝만큼의 인연도 없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계속 ‘인도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 들의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이렇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인도사람도 인디언이라고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인디언이라고 부르니까 때로는 혼동되고 헷갈릴 때도 많다.

그런데도 지금껏 아메리카인디언도 진짜 인도사람도 어느 단체나 개인이 공식적으로 이 명칭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시정하려고 애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헷갈리고 찝찝하게 느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