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이 두 개다. 첫째 생일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생물학적 나이’로 8순이다. 가끔 장수가 아니라 천수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전히 생각이 많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디아스포라 생일’이다. 1968년 12월12일, LA 공항에 도착한 날이다. 전날 한국을 떠날 때는 ‘동장군’이 기습해와 온통 ‘얼음 공화국’이었는데, LA는 거의 초여름 날씨였다. 야자수가 살랑거리고 있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몇 번씩 되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간호사들이 ‘디아스포라(Diaspora)’ 즉 해외이주를 할 수 있었던 곳은 서독뿐이었다. 그런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이민개혁으로 60년대 후반 간호사들에게 미국 이민의 길이 열렸다. 그래서 ‘루프트한자’ 대신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타고 LA 공항에 내린 것이다. 남편과 두 아이를 서울에 남겨둔 채 트렁크 하나만 달랑 들고. 그러니 ‘디아스포라 나이’로는 올해 47세를 맞는 셈이다.
이렇게 미국으로 온 간호사들은 저마다 가족들을 초청하면서 미주 한인사회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서독에서 일하던 한국 간호사들의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인 디아스포라에 간호사들의 역할은 지대하다.
간호사로 미국에 발을 디딘 47년 세월을 거슬러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 재외한인간호사 대회가 오는 17일부터 서울에서 열린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재외한인간호사회 총회에 참석하는 회원은 300명을 헤아린다. 미국과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 그리고 유명대학에 적을 둔 교수들과 정부의료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엘리트 간호사들이 총망라돼 있다.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있는 한인 간호사들이 정보 교류 및 발전을 위해 네트웍을 형성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 재외한인간호사회이다. 2012년 LA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재외한인간호사회에는 재미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유럽, 호주, 중동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간호사 3만 여명이 소속돼 있다.
이번 서울 대회에 참가하는 재외간호사 가운데 상당수는 1.5세 및 2세들이다. 내가 꿈꾸어 왔던 일이 이뤄지는 것 같아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 특히 협회 구성원 가운데 1.5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미 은퇴기에 접어든 1세와 현지에서 태어난 2세를 아우르고 소통할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재외한인간호사회 초대(창립) 회장을 맡아 일해온 지 3년이 되었다. 임기가 아직 1년 더 남아있지만 이제는 물러나려 한다. 훨씬 유능하고 자격을 갖춘 후배 간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야 협회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믿는다.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라질’ 마음이 별로 없다. ‘평회원’으로 남아 계속 참가할 생각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 근무한 텍사스에서는 “한번 텍산이면 영원히 텍산(Once a Texan, Always a Texan)”이란 말이 있다. 어디에 살든 텍사스에서 태어났으면 영원히 텍사스 사람이란 뜻이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히 해병’이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한번 간호사면 영원히 간호사’라고 생각한다. 아픈 이들을 돌보고 힘든 이들을 보살피는 간호사의 정신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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