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환자 한분이 허리와 배가 아파서 입원을 했다. 허리 x-레이에서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대변에서 피가 발견되었다. 복부 단층촬영 결과 복부 대동맥이 동맥경화에 의해 풍선처럼 넓어지는 동맥류가 발견되었다. 동맥류에서 조금씩 출혈이 되고 있어서 급하게 스텐트 튜브를 혈관 안쪽에 넣고서야 동맥이 완전히 찢어지는 위기상황을 넘겼다.
동맥경화는 사망과 조기불구의 주원인이 되며 혈관이 가는 모든 장기에서 일어날 수 있다. 심장 혈관에 동맥경화가 오면 심근경색으로 심장마비를, 뇌동맥이 좁아지거나 약해져서 터지면 중풍, 다리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다리가 차갑거나 시리고, 걸을 때 조이는 듯한 통증을 유발한다.
소장, 대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는 경우 장이 썩어 들어가며 심한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며 신장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지면 고혈압 조절이 안되고 신장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진찰을 세심히 하면 좁아진 신장혈관을 통과하는 피가 일으키는 소용돌이 소리를 배꼽주위에서 들을 수 있다.
소용돌이 소리를 들으며 영화 ‘명량’을 떠올렸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 4월13일 부산진에 쳐들어 왔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했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되었던 조선군은 우왕좌왕했고, 선조는 4월30일 새벽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쳤다.
임금의 피난행렬이 홍제동 고개에 올랐을 때 서울은 불바다가 되었다.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에서 불이 났는데 불을 지른 사람들은 왜군이 아닌 백성들이었다. 백성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을 착취했던 왕권은 공동체 의식을 세워주지 못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3천리 강토가 유린되었을 때 바닷길을 지켜 이 나라가 남아있게 한 사람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진도의 앞바다, 명랑해협의 ‘명량’은 우리말로 울돌목이라 부른다. ‘울’은 ‘운다’, ‘돌’은 ‘돌다’의 의미인데, 물길이 휘돌아 나가는 바다가 마치 우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려 붙은 이름이다.
남해에서 들어온 바닷물은 명랑을 지나며 엄청난 속도의 조류로 돌변한다. 초속 6미터가 넘고 밀물과 썰물도 하루 네 차례나 되며 불규칙한 수중 암반 때문에 물이 솟구치거나 회전하는 회오리 현상이 일어난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시기에 이순신 장군은 이 지형의 특성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물리치는 명랑대첩을 이루었다.
위기에 몰려 시름에 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장군은 민중의 고통,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울돌목의 소리도 들었다. 충무공은 당파 싸움의 억울한 비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에게 들려줄 소망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함석헌 선생은 “하나님이 이 한사람을 이 나라에 주지 않았다면 그 한줄기 길은 없었을 것이다. … 나는 그를 생각하면 감격의 눈물을 못 금한다”고 했다.
요즘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때와 같이 이웃 열강들은 일어나는데 한반도내 이익집단 간의 싸움은 여전하다. 지도자들은 민중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지도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자신을 살피고, 주위와 이웃을 돌아보아야한다. 가족, 이웃, 공동체의 병들고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고통의 소리와 희망의 소리에 같이 귀 기울여야 한다.
작년에 나는 울돌목 앞에서 한참동안 발을 떼지 못하였다. 먼발치에서 웅웅거리는 소용돌이 소리는, 신장혈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도 더 크게 “제대로 살라”고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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