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1년 동안 1억3,00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 탄생하는 아버지의 숫자도 엄청나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자녀양육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멍에를 안고 살아간다. 피터 그레이와 커밋 앤더슨이 쓴 ‘아버지의 탄생’에 의하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DNA에 축적된 수컷=짝짓기, 암컷=양육노력으로 특화된 동물 진화의 흔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들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에 비해 자녀들과 거리감이 있고 유대감도 덜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아버지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시간을 자녀양육에 할애하고 있다고 하니 너무 나무라기만 할 일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인터넷상에 “나는 아버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유명한 딕 호잇 부자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딕의 아들은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이 감기면서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어 뇌성마비와 전신마비를 갖고 태어났다. 혼자서는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아들을 의사들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은 기계를 통해 몇 마디 단어를 사용하며 자기감정을 표현하게 되었는데, “달리다(Run)….달리고 싶다.”가 그 첫 마디였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8km 자선달리기 대회에 나가서는 꼴찌에서 2번째로 들어왔다. 경기 후 아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몸의 장애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달리는 순간 장애를 잊게 된다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는 달리기를 계속 했다. 마라톤대회 1000번 이상, 철인3종 6차례, 단축철인 3종 경기를 205회 완주했고, 달리기와 자전거로 6000km 미국 대륙횡단을 했다. 아버지 딕 호잇은 말했다.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엔 이렇게 희생적이고 적극적인 경우도 있지만, 말없이 눈감아 주는 보이지 않는 사랑도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아들 하나에 희망을 걸고 논밭을 팔아 아들을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보냈지만 아들의 첫 학기성적은 꼴찌에 가까웠다.

아들은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릴 수 없어 고민 끝에 성적표를 조작해서 일등으로 만든 후 보여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성적표를 자랑하며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살림밑천인 황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들은 그후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마침내 전교 1등으로 졸업했고, 그 후 모교의 교수를 거쳐 경북대 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날 80줄의 아버지가 총장 아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들이 그 얘기를 꺼내려 하자 아버지는 “진작부터 다 알고 있었으니 얘기할 필요 없다”고 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네 마음에 나는 전 재산인 황소를 걸었다. 그 후 나는 그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고마웠다.”

이 이야기는 경북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찬석 교수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는 순간 누구나 아버지가 되지만, 모두가 좋은 아빠,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나는 과연 좋은 아버지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아버지 노릇은 나에게 여전히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