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백(白)씨가 있듯이 미국에도 ‘White’씨가 있다. 미국엔 한국에 없는 ‘흑(黑, Black)’씨도 있다. 하지만 성씨와 인종은 전혀 상관없다. 배우 셜리 템플 블랙과 루카스 블랙은 백인이다. 컨트리 싱어 클린트 블랙도, 내가 좋아하는 악단 지휘자 스탠리 블랙도 백인이다. 반대로 가수 배리 화이트, 야구선수 데본 화이트, 농구선수 로이스 화이트는 흑인이다.
‘Yellow(황)’ 성씨의 미국인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왜 인종분규의 상징 색깔인 ‘White’와 ‘Black’ 성씨만 있는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이젠 성씨는 물론 외모를 보고도 백인과 흑인을 분별하기 애매한 세상이 됐다.
며칠 전, 70평생을 흑인으로 산백인 할머니 얘기가 화제가 됐다.
캔자스 주에서 태어나 흑인부부에 입양됐던 버다 버드 할머니는 흑인동네에서 흑인문화에 젖어 살면서 자기가 ‘피부 빛이 좀 덜 검은 흑인’인줄 알고 살아왔고, 이웃들도 자기를 그렇게 대했다고 했다. 동네 미장원에서 흑인처럼 머리를 볶았고 마틴 루터 킹 기념일행진에 매년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13년 우연히 ‘족보 나무(Family Tree)’ 를 탐색한 버드 할머니는 자신의 본래 이름이 지네트 비글이며 친부모가 백인임을 알고 까무러치게 놀랐단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 논란이 된 워싱턴 주 스포켄의 레이첼 돌레잘 여인 케이스와는 전혀 다르다고 역설했다.
막강한 흑인 인권단체인 전국유색인종 권리향상연맹(NAACP)의 스포켄 지부장이었던 돌레잘은 누가 봐도 백인이었다. 그녀는 선탠으로 흰 피부를 그을리고 금발머리도 볶았다. 탁월한 능력으로 NAACP 지부를 이끌었고, 스포켄 경찰국의 민간 감시기구 위원장직도 겸했다. 하지만 그녀는 경찰국에 낸 이력서의 인종란에 ‘흑인’으로 기입한것이 화근이 됐다.
백인이 취업을 위해 흑인으로 위장한 사기행위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NBCTV의 ‘투데이’ 대담 프로그램에출연해서도 자신은 누가 뭐래도 흑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참다못한 그녀의 친부모가 “내 딸은 100% 백인”이라고 증언했고,그녀는 NAACP 지부장직에서 물러났다. 경찰국 직책에서도 해고당했다.
흑인 판별기준은 원래 들쑥날쑥했다. 부모 한쪽이 흑인이거나 양쪽이 혼혈이면 흑인으로 판정한 주도 있었고 흑인 피가 ‘한 방울’만 섞여도 투표권은 물론 흑인아닌 인종과 결혼도 못하게 한 주도 있었다.
자연히 흑인 행세한 백인보다는 백인행세(‘패싱’)한 흑인이 많았다.
지난주 한국일보사의 협력 인터넷 매체인 시애틀N이 주최한 올해 ‘코리아 글짓기대회’ 시상식에서 최고상 수상자인 킴벌리 호건(30)여인을 대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분명히 흑인이었는데 한국말이 한국인처럼 유창했다. 흑인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외모와 상관없이 자신을 흑인이 아닌 한인으로 규정하고 한인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한인친구와 사귀며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K팝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 서강대학교 유학생으로 6개월간 서울에 체류하는동안 인종용광로인 미국에서보다도 한인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느꼈고 주위 사람들도 한인으로 대해줬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자기 말고도 ‘흑인 같은 한인’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돌레잘은 제너의 성전환처럼 자기는 인종전환 케이스라고 주장하지만 어설프다. 대체로 인종전환은 입양아처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종이 달라지는 경우다. 버드는 완벽한 인종전환 케이스였지만 백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종전환이 필요 없는 호건은 스스로 한인을 택했다. 그녀 같은 ‘선택 한인’이 많아질수록 한인사회는 더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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