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융자 신청이 들어왔다. 200만 달러에 상업용 빌딩을 사겠다는 계획이었다. 중국계 상권이 몰려있는 지역의 빌딩으로 이층과 삼층은 아파트, 일층은 K씨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그는 중국계 투자그룹이 건물을 소유한 후부터 렌트를 올리겠다는 압박을 계속 받아왔다. “일단 빌딩을 사면 렌트 걱정은 할 필요가 없고, 아래층 식당에서 나오는 수입도 괜찮고, 건물 위치도 상권이 활발한 지역이니 장래성도 있을 것 같아”
값이 비싸긴 하지만 빌딩을 사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나는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00만 달러는 아닙니다. 렌트 수입에 비하면 지나칩니다. 식당을 하시니까 장기 리스가 필요하시겠지만 그 가격은 무리입니다.”
그 빌딩에서 제일 큰 수입은 그의 식당에서 나오는 렌트인데, 건물주가 리스를 연장 안 해주어서 나가게 되면 그들이 더 손해를 보게 될 것은 분명했다. 위층의 아파트 입주자들은 렌트 컨트롤 때문에 렌트가 싸니까 계속 살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리스 걱정을 하시는 줄 알고 그 참에 비싼 가격으로 팔려고 하는 겁니다. 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론도 어렵죠.”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나 K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빌딩을 샀다”고 했다. 뉴욕에 있는 한국계 은행에서 일차 융자를 받고 이차는 무슨 캐피털 회사에서 받은 후 다운페이는 조금만 했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성사될 리가 없는 융자였다.
그리고는 일 년쯤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한창 경기가 어려울 때였다. 그를 만나보니 그 인상 좋던 얼굴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은행에서 독촉 편지가 왔는데요. 제 형편을 설명해 주시고 페이먼트를 줄여달라는 편지 한장 부탁드릴게요.”
한동안 ‘최소한의 다운페이로 최대한의 대출’을 받아 빌딩을 구입한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입주자 몇 명이 렌트를 못 내면 전체가 흔들릴 수가 있다.
앞의 K씨 역시 아파트 렌트가 안 나와도 자신의 비즈니스 수입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빌딩을 소유하고 보면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은퇴에 대비하여 상업용 건물을 사둔 분들 중에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사고 보니 그게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몇 년 지나지 않아 밑지고라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친다. 땀 흘려 번 돈으로 사들인 빌딩을 허망하게 잃어버린 투자자가 적지 않다.
은행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최소한의 조건만 맞으면 융자를 제공해서 ‘눈앞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은행은 문제가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마치 은행원이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한다는 입장”에서 융자를 다룸으로써 고객들이 오래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융자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해드릴 수 없다”는 고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오래 살아야 은행도 오래 살 수 있다. 한인타운을 지나며 “저 빌딩 내 거였지”라고 말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상업용 건물 투자 실패는 순전히 그들만의 잘못일까? 은행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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