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우드 박물관 2 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
마리 앙트와네트 시대의 장식-러시아 황실의 컬렉션
어느 것이 더 화려할까
영국 여왕보다 재산이 많았다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사용하였던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의자와 카펫, 장식적인 그림과 조각, 가구들, 아름다운 보석 장신구와 패션 컬렉션, 영국 황실에서 사용하던 왕관과 아이콘, 고급 명품 시계 컬렉션,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박물관이 워싱턴 D.C.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18세기 신고전주의나 로코코 시대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이 미술관은 즐겨 찾는다. 컬렉션의 범위와 수준이 높아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든을 산책한다든지, 조그마하지만 수준 높은 미술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한다든지, 혹은 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힐우드 뮤지엄은 미술관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었다. 한 개인의 저택을 그의 자손들이 미술관으로 전환한 것이다. 저택의 주인은 마조리 포스트(Marjorie Merriweather Post)라는 여인으로 그의 재산이 영국 여왕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재산보다도 그녀의 모든 면에서 미와 우아함을 추구한 것, 특히 그녀의 사업 수완과 자선사업은 유명한 일화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신고전주의와 로코코 스타일
포스트는, 20세기 초 부모님이 그녀 나이 27세에 돌아가시면서 남겨주신 2천만 달러 가치의 시리얼 회사인 포스트(Post)의 주인이 되었다. Post 시리얼 회사의 딸인 그녀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고 난 후 Post라는 처녀 때의 성을 다시 찾았다. 힐우드 맨션과 가든을 거닐다 보면 화려하지만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운명의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포스트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미술에 특히 심취하였다. 특히 루이 16세의 신고전주의와 로코코 스타일은 당시 뉴욕의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절제되고 균형을 갖춘 격조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과 섬세한 장식성을 보여주는 로코코의 대조적인 두 미술 사조를 비교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모네도 부러워할 13에이커에 조성된 13가지 정원
그의 미술품 수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사람은 영국의 화상 죠셉 뒤빈(Joseph Duveen)이다. 그의 고객은 록펠러, 멜론, 모간 등 초기 미국 미술의 주요 컬렉터들이었다. 비록 대가들을 수집하라는 그의 권유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를 통해 그녀의 심미안과 취향은 결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대사 부인으로
포스트의 두 번째 결혼은 은행가와 했는데, 그들은 포스트 시리얼 회사를 제너럴 푸드라는 최초의 냉동식품 회사로 전환하였다. 더욱 자산가가 된 그녀는 사교와 자선사업의 중심이 되었고, 예술품 컬렉션도 수준을 높였다.
세브르(Sevres) 컬렉션 도자기, 프랑스 가구와 보석, 특히 러시아 파버제(Faberge)의 최고 수준의 컬렉션이 있다. 뉴욕 아파트를 비롯해 여러 채의 집과 네 개의 요트 또한 그녀의 완벽한 장식의 대상이었다.
포스트의 세 번째 결혼은 러시아로 파견된 대사 조셉 데이비스와 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 후 몰락한 러시아 황실과 귀족의 컬렉션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고, 그곳에서 러시아 미술에 눈을 뜬 포스트는 러시아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그녀의 정치력, 외교 능력, 그리고 자선가 사교가로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데이비스와 이혼 후 1955년 워싱턴 D.C.의 자택 힐우드를 사들였다. 원래 조지안 스타일이었던 집을 개조하여 그녀의 컬렉션을 전시하기에 적당하게 개조하였다.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교계 최고의 꽃이 된 포스트는 정치가, 사업가, 예술가 등 워싱턴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파티의 주최자가 되었다. 힐우드에서는 즐기는 파티만큼이나 유명한 자선행사들이 이루어졌다. 전쟁 참전 용사나 군인들, 환자들, 그리고 구제 단체를 위해 큰 행사를 벌였다.
모네가 부러워할 정원
입구부터 출발하여서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일정 간격을 두고 제공되는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많은 전시 룸 중의 백미가 프랑스 드로잉 룸(French Drawing Room)인데 카펫, 의자, 도자기 등 하나하나가 모두 프랑스 왕실에서 쓰던 것이든지 황실이 주문하는 회사에서 만든 것들이다. 물론 키친 등은 아주 최신식의 부엌 시설로 개조하였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컬렉션은 러시아 종교미술의 방이다. 포스트가 러시아에 있을 때 러시아 붕괴로 탄압받은 종교 관련 미술품들이 값싸게 처리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그녀는 약 200점 이상의 러시아 정교 미술품을 수집하여 소장하였다. 동로마 비잔틴 양식이 그리스와 러시아로 전파되어 꽃을 피운 기독교 미술의 한 양식을 보여주는 성배(기독교 제의 때 쓰이는 잔)나 아이콘(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여러 개의 패널에 그려 넣은 그림)은 포스트 컬렉션의 진수중 하나이다.
또 하나, 이 미술관의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은 정원을 거니는 것이다. 작고 아기자기한 ‘프랑스 정원’을 비롯해서, 인상파 작가 모네가 부러워 할 ‘일본 정원’, ‘장미의 정원’, 그리고 모든 것을 갖춘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었던 ‘친구들의 산책길’, 식물원 등 시간을 충분히 잡고 즐길 만한 13에이커에 걸친 13가지의 다른 종류의 일종의 정원 박물관이다.
카페에서 느끼는 시대의 포만감
이 정도 걷고 나면 시장기가 돌 것이고, 이때 힐우드 카페에서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여유와 여전히 포스트의 취향이 느껴지는 메뉴의 점심을 하길 권한다. 카페 분위기도 좋고 맛도 수준급인 이곳에서 한나절을 마감하면 한 시대를 풍미한 포만감으로 가득찰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부호들이 19세기 인상파 등의 미술품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면, 훨씬 고가에도 구하기 힘들었을 18세기 유럽 미술을 거의 완벽하게 소장하고 있었던 포스트의 맨션과 미술관은 미술사적으로 귀하다.
특히 로코코 미술은 건축과 가구 등 소품과 장식품에 치중했으므로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데, 로코코(Rococo)는 자갈이나 조개의 조가리를 일컫는 Rocaille에서 유래한 말로, 섬세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일컫는다. 로코코는 바로크의 웅장한 남성적인 스타일에 반발한 여성적인 스타일로 프랑스의 귀족 아내들에 의해 발전된 살롱 문화 (귀족의 거실에서 이루어진 문화 이벤트)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포스트의 삶은 20세기 미국에서 로코코 문화를 실천했던 산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개장: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주소: 4155 Linnean Avenue,
NW Washington, DC 20008
이정실 미술사가
artrio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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