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최상의 경칭
기성(棋聖)이란 바둑의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프로기사로서는 최고의 품계인 9단(入神)이 되었다고 받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다. 명인이나 국수와도 격(格)이 틀리다. 바둑의 기술적인 면인 기예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으로써 기품과 인품이 두루 겸비되어 어느 분야에서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최상의 경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에서는 악성(樂聖) 베토벤이 있고 시인으로는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가 있고 한문 서예에는 서성(書聖) 왕희지가 있다.
명칭에는 존경과 존엄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바둑을 받아들이고 기도(棋道)로써 승화시켜 보급한 시대는 일본의 전국시대이다. 오로지 검과 힘만이 난무하여 전국이 전쟁으로 회오리바람이 불던 시기다.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인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82)가 교토의 작은 절인 혼인보(本因坊)의 주지이자 당대의 최고수인 닛카이(日海 1559-1623)와 대국을 하였다. 그 후 상대의 높은 기력을 인정하여 명인 칭호를 이름 앞에 붙여 불렀다 한다. 그래서 초대 명인 본인방이라 칭하게 된 것이 일본 명인의 효시가 되었다.
그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들어서고 명인기소라는 바둑을 총괄하는 관청이 생기게 되었으며 바둑을 전문으로 하는 바둑 가문(家門)이 생기게 되었다.
최초의 혼인보 가를 선두로 야쓰이(安井家), 이노우에(井上家), 하야시(林家) 등이 바둑가문이다. 바둑을 총괄하는 명인기소라는 벼슬자리를 향해 피나는 경합을 하며 가문의 영광과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 정도로 치열한 바둑대결을 벌였다고 많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역대3명의 기성
일본의 전국시대를 시발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 동안 기성칭호를 받았던 사람은 3명이다. 일본 막부시대 명인기소로 활약하여 일세를 풍미한 기성 도샤꾸(道策). 수 나누기라는 바둑 비급을 전하며 최초의 수 읽기의 개념을 창안하였다고 한다.
흑선 필승의 신화를 창조하여 백전 무패를 이루어낸 명인기소 기성 슈사꾸(秀策), 그리고 100여년 후 혜성처럼 중국에서 나타난 살아있는 기성 오청원 9단이다.
근대 바둑 역사상 바둑의 선진국이라 자부하며 동양 삼국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갖추었다고 하는 일본이 중국인 오청원을 자국의 기성으로 부르며역사속의 기성들과 같은 반열에 올린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청원은 1914년 6월 중국 복건성 복주(福州)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유학을 하였던 부친으로부터 바둑을배웠다. 그 이후 그는 곧바로 부친과형제를 능가하게 되고 1세가 되어서는 중국 전역에 바둑 신동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복건성 내의 중국 북부지역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당시 오청원의나이 11세였다.
이러한 천재소년의 소문이 일본에까지 전래되어 세고예 겐사꾸 9단(조훈현 9단의 스승)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세고예 9단 문하에서 숙식을 하며 바둑수련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 진출한 오청원
중국의 신동 오청원의 등장으로 일본 바둑계는 물론 모든 신문사들이 일본 전역에 보도를 하면서 독점중계보도를 하기 위해 신문사들끼리 경합을 벌이게 되고 많은 바둑인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과연 이 천재소년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첫 번째 관문으로 일본의 신예 프로기사 시노하라 4단과바둑대결을 벌인다. 천재소년 오청원은 당당히 불계승을 거두며 새롭게 일본에서의 바둑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흐르는 물은 서로 앞을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 동양사상인 도가(道家)사상에도 일가견이 있는 오청원 기성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의 기풍은 흐르는 물처럼 유유(悠悠)하다. 바다를 향하여 거침없이흐르는 물처럼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함이 있다.
일본 유학 10년만에 그는 패권자로 군림하며 일본 당대의 기라성 같은 기사들을 차례차례로 무너뜨린다. 말그대로 천하무적이었다.
영원한 기성
요미우리 신문사는 그를 타도할 타깃으로 정하여 역사적으로도 유명한10번기 칫수고치기 바둑대회를 개최하였다. 승패로 바둑기사의 서열을 정하고, 지면 무조건 하수(下手)로 인정하는 칫수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프로기사들은 목숨이 달려 있는 승부시합이다. 그는 30만 대군에 완전 포위된 항우처럼 적장들로 완전 포위됐다. 하지만 그는 당대 일본의 최고수 기타니 9단을 선두로 그 후 무려 20여년 동안 후지사와 9단 하시모도9단, 사카다 9단, 다카가와(高川格)9단 등초일류 기사들을 무너트리면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당시는 그의 조국인 중국이 일본과 중일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이기도 하였다. 국수주의자인 일본인들의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필마단기로 고군분투하며 적국 일본에서 그 살벌했던 전쟁터를 종횡무진한 것이다.
지난 2014년은 오청원 기성의 100세 되는 해였다.6월 생일을 맞으면서 아직도 바둑 수련을 더하라고 수명을늘려 주신것 같다고 하며 평생 공부하는 학자로써의 면모를 후배들에게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천수를 다하여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기성에서 이제 영원한 기성으로의 길을 떠난 것이다. 바둑사에 한 페이지를 남기면서…
choi1581@daum.net
바둑용어
명인기소-바둑인들을관리 감독하는관청의우두머리
불계승(不計勝)-집수도계산하지도 않고바로 이기는 것
기력(棋力)-바둑의 실력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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